프로즌 요거트
퇴사 후 보름 간의 미국 여행을 계획하며, 먹어보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빼곡히 작성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다는 주니어스 치즈케이크, 육즙 가득한 티본스테이크, 길거리 푸드트럭의 타코, 갓 구운 1달러 피자…, 그중 하나가 미국 드라마에서 봤던, 프로즌 요거트였다.
넷플릭스 드라마『굿 플레이스(The Good Place)』는 유쾌한 상상력으로 사후세계를 그려낸다. 착한 사람들만 간다는 ‘굿 플레이스’에 엉뚱하게 오게 된 주인공 엘리너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드라마 속 ‘굿 플레이스’는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마을 곳곳에 프로즌 요거트 가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은 형형색색의 프로즌 요거트를 맛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곤 했다. ‘대체 무슨 맛이길래?’ 드라마를 볼 때마다 궁금증은 커졌고, 뉴욕에 가면 꼭 맛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뉴욕은 과연 미식의 천국이었다. 살인적인 물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보면, 이곳에선 음식 맛이 곧 생존의 조건이 아닐까 싶었다. 맛이 없다면 이 경쟁 속에서 오래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많은 프로즌 요거트 가게 중, 내가 선택한 곳은 ‘16 handles’였다. 뉴욕 곳곳에 체인점을 둔, 비교적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구글맵에 의존해 찾아간 골목 귀퉁이의 작은 프로즌 요거트 가게는 드라마 속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둑한 노란 조명 아래 칙칙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게 안에는, 무료한 표정으로 요거트를 먹고 있는 손님 두 명과 피어싱을 한 뚱한 표정의 아르바이트생만이 팝송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낮에 꾸는 꿈처럼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나는, 눈알만 도르르 굴리며 가만히 서 있다 가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프로즌 요거트 가게는 셀프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원하는 맛의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직접 컵에 담고, 다양한 토핑을 취향껏 올린 후 무게를 재서 계산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초콜릿 브라우니와 쿠키 도우 토핑을 듬뿍 올린 요거트 아이스크림 컵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저울에 찍힌 가격은 4.94달러. 당시 환율로 계산해 보니 6,800원 정도였다. 아르바이트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액수를 가리켰다.
‘혹시 이거 인종차별인가?’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곧이어 가게 안으로 들어온 현지인에게도 똑같이 퉁명스럽게 응대하는 것을 보고 ‘아, 그냥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이 풀리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괜히 혼자 찔렸던 게 우스웠다.
드디어 맛보게 된 프로즌 요거트는, 기대와는 달리 부드럽고 크리미 한 식감보다는 서걱거리는 셔벗에 가까웠다. 셔벗처럼 가볍게 녹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셔벗의 중간 정도의 묵직함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처럼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왠지 몽롱한 분위기 속에서 맛본 프로즌 요거트의 맛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맛보다는 묘한 분위기만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