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토마토 청
다니던 회사가 이전을 했다. 원래 편도 40분이던 통근 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늘어났고, 두 번의 환승은 덤이었다. 회사 이전과 함께 조직 개편이 이어지며, 회사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코로나로 인해 프로젝트 규모가 줄어들고, AI의 도입으로 자동화가 보편화되면서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통근 시간을 하루하루 견딜 때마다 내면의 화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옆자리 동료가 바스락거리는 바지를 입고 다리를 떠는 게 거슬렸다. 좁은 골목길에서 세 명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며 길을 가로막는 게 짜증 났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8시 뉴스가 나온다. 오늘도 누군가는 사기를 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람을 죽였다. 이런 이야기가 끔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크게 놀라지 않을 만큼 무감각해졌다.
대부분의 회사가 9시까지 출근하는 탓에, 회사가 밀집된 지역으로의 출퇴근 열차는 ‘지옥철’이라는 악명이 붙었다.
한 번이라도 지옥철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그 이름이 절대 과장이 아님을 안다. 좁은 공간에 빽빽한 사람들로 퍼스널 스페이스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열차 안은 산소 대신 점점 이산화탄소로 가득해지고, 내가 차지하는 영역은 점점 쪼그라든다. 가뜩이나 밀착해 있는 탓에 곤두선 신경은 오감을 깨우고, 온갖 냄새가 코로 들어온다. 어떤 점퍼에서는 아침밥의 트림 냄새 같은 것이 찌꺼기처럼 달라붙어 있다. 어떤 구두는 텁텁한 가죽 냄새가 난다. 장만한 지 얼마 안 된 신발인지 본드 냄새가 섞여 머리가 아프다. 어떤 재킷은 지독한 향수 냄새가 난다. 욕지기가 솟구친다. 이 공간에 온전히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최악의 구간을 지나고 나면 산소가 조금씩 채워진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 속으로 금방 내릴 것이라고 예상한 인물이 다음 역에 내렸다. 장바구니를 들고 탄 사람은 금방 내린다. 장 보러 멀리까지 가는 경우는 드무니까.
앞자리가 비자마자 잽싸게 자리를 차지했다.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잠시 다가왔다가 뒤로 물러난다. 나는 무거운 백팩을 다리 위에 올려두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음악은 틀지 않았다. 그러고는 맞은편의 신발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회사를 그만두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내면의 화가 서서히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항상성이 있다고 했던가. 시간 여유가 생기자 마음은 잠시 차분해졌지만, 여전히 쉽게 화가 나고 금방 가라앉았다.
하루는 모처럼 한낮에 카페에 들렀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내 팔을 툭툭 쳤다. 반사적으로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돌아보니 한 학생이 떨어진 지갑을 내밀었다. 일그러지려던 표정이 어정쩡하게 멈췄다. 지갑을 받아 들며 얼떨결에 감사 인사를 했다. 작은 친절이었지만, 진심으로 고마웠다. 내 마음속엔 그 정도 크기의 이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좋든 싫든, 죽을 때까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세상은 나를 위해 양보해 주지 않고, 나 역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면서 받은 뜻밖의 친절들이 떠올랐다. 길을 헤맬 때 모르는 사람이 목적지를 찾도록 도와준 일, 떨어뜨린 지갑을 누군가 건네준 일들. 뉴스를 보며 세상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출퇴근 시간에 세상을 싫어할 이유를 몸소 체험하면서도, 내 안에는 여전히 선의에 대한 믿음이 작게 숨 쉬고 있었다.
그런 마음들에 빚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는 일은 지속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아직 젊고 건강할 때 땀 흘리며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 농촌 봉사 프로그램을 검색하다 ‘마을 공동체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2주 동안 농촌 마을에 머물며 일손을 돕고 함께 사는 프로그램이었다. ‘공동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뇌리에 남았다.
고속버스가 하루 세 번밖에 오지 않는 작은 마을. 나와 함께 2주를 보낼 사람은 세 명이었다. 우리는 서로 나이를 묻지 않고 원하는 별명으로만 불렀다. 나이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무심코 달라진다는 걸 느꼈다.
그곳에서는 자급자족의 생활을 지향했다. 필요한 것은 가능한 밭에서 얻고, 마트에는 최소한만 갔다. 매일 저녁 함께 요리를 했다. 신선한 야채들을 따와 쌈밥을 만들어 먹고, 전을 부쳤다. 어느 날은 밀가루를 반죽해 피자를 만들기도 했다.
마을에 도착한 지 며칠 후, 우리는 지역 축제 준비를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곳에서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 마을 주민들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특산물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마을 사람들은 물론 도시에서 찾아온 방문객들까지 모두 한데 어우러져 즐기는, 정겹고 활기 넘치는 축제였다. 우리는 축제에서 밭에서 직접 수확한 바질로 특별한 청을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다.
방울토마토는 잘 익은 것만 골라 찬물에 살짝 담갔다가 꺼내, 꼭지 반대편에 칼로 십자 모양의 칼집을 작게 냈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가 곧바로 얼음물에 담그면 신기하게도 껍질이 저절로 말려 올라갔다. 톡 터질 듯 탱글탱글한 붉은 토마토를 손끝으로 살짝 밀어내니, 마치 얇은 비단을 벗겨내듯 껍질이 매끄럽게 벗겨졌다. 껍질을 벗긴 토마토에서는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잘 익은 제철 토마토 특유의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바질은 방울토마토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다뤄야 했다. 잘린 잎의 단면이 상해 갈변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질했다. 잎사귀를 한 장씩 떼어낼 때마다 손끝에 초록의 향이 진하게 묻어났다. 코끝을 간질이는 바질 특유의 산뜻한 풀 내음은, 끝나가는 여름의 마지막 싱그러움 같았다. 큰 양푼에 방울토마토와 바질을 담고, 설탕과 레몬즙을 넣어 조심스레 버무리면, 토마토에서 스며 나온 과즙에 설탕이 서서히 녹아들었다. 미리 열탕 소독을 마친 깨끗한 유리병에 청을 담아내면, ‘바질 토마토 청’ 완성! 유리병 겉면을 한 번 더 닦아내며,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우리의 정성과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바질 토마토 청은 하루 동안 숙성한 후, 축제에서 판매됐다. 밭에서 바질을 따는 순간부터 유리병을 닫는 마지막까지, 내 손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져 누군가에게 건네지는 그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다는 사실이 성취감을 주었다.
축제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쩌면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서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서까지 회사에 억지로 매달렸던 건 아닐까. 쓸모를 거창하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의 기준을 따라가려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은, 내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오늘의 먹거리를 구하고 배고픔을 달래는 소박한 일이 내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임무라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도시로 돌아가면 또다시 ‘쓸모’를 증명하라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한 번 금이 간 생각은 쉽게 다시 금이 간다. 그때마다 나는 이곳에서의 경험을 다시 꺼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