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로 빵

소보로 빵

by 작심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조금씩 더워지는 초여름의 토요일 아침, 나는 어김없이 빵집에 출근해 환기를 시키고, 갓 나온 따끈한 빵들을 차례로 진열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진열된 빵들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소보로 빵을 하나 집어 카운터 앞으로 걸어왔다.


결제를 마치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조심스럽게 오래된 빵이 있으면 나눠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의 머뭇거림에 나는 어딘가 마음이 쓰였다. 내가 일했던 빵집에는 전날 팔고 남은 빵들이 항상 서너 개 정도 남았다. 손님들에게 팔 수 없는 빵들은 직원들의 간식거리가 되거나, 그대로 폐기되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세 개의 빵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남는 빵이 따로 없다고 대답했다. 혹시라도 팔지 않는 빵을 먹고 탈이라도 나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소보로 빵을 들고 빵집 문을 나섰다. 깊게 패인 주름살과,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작업용 조끼, 그리고 그가 고른 소보로 빵이 아빠를 떠올리게 했다. 소보로 빵은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빵이었다.


어렸을 적 TV 속에서 그려지는 ‘일하러 간다’는 모습은 늘 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네모반듯한 사무실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회사원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셔츠대신 편한 기능성 티셔츠에, 주머니가 여러 개 달린 작업용 조끼를 입고 출근하는 아빠를 보면서도 내가 본 것 이외의 다른 노동이 존재한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 방과 후에 가던 영어학원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버스를 타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작은 간판 가게가 있었다. 가게 앞에서 어떤 아저씨가 간판에 시트지를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눈에 그 아저씨의 실루엣이 아빠와 겹쳐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설마 아빠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한 발 한 발 가까이 다가갈수록 요동치는 심장이 아빠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아는 척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보던 드라마 속 ‘실장님’의 주름 하나 없이 말끔하게 다려진 양복 셔츠와 아빠의 후줄근한 작업용 조끼가 자꾸만 겹쳐져 보였다. 아빠의 모습은 폼나지도, 멋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혹시 친구라도 마주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어린 나에게는 일종의 결핍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아빠를 모른 척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는 생각과, 그럼에도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뒤엉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래도 이대로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것만은 할 수 없었다. 그건 배신 같은 일이었다. 망설임 끝에 나는 슬금슬금 아빠 옆으로 다가갔다.


세심한 손길로 시트지를 붙이는 작업에 몰두하느라 아빠는 가까이 다가온 나를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아빠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러고 있을 때, 저 멀리 영어학원 버스가 도착했다. 아빠는 끝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영어학원에 도착해서도 좀처럼 그 잔상과 충격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선생님 말씀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여러 감정들이 뒤섞이고 있었다. 부끄러움, 미안함,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가슴 한편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이면 늘 사탕을 걸고 퀴즈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평소 정답을 맞히진 못해도 손드는 것만큼은 누구보다도 빨랐던 내가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이 영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결국 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내 상태가 이상하다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엄마는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점심시간이면 열댓 명의 회사 인원 모두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는 것이 그곳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어느 날, 다 함께 백반집에 간 날이었다.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한 식당 안에서 나는 익숙한 뒷모습을 한눈에 발견했다. 틀림없는 아빠의 뒷모습이었다. 여전히 편안한 기능성 티셔츠에, 그날따라 현장에 흙먼지가 많았는지 청록색에 가까운 작업용 조끼의 색이 짙은 카키색으로 변해 있었다. 새하얀 형광등 아래서 확인한 얼굴은 역시 아빠였다. 나는 아빠가 다른 아저씨들과 식사하는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가, 대뜸 인사를 건넸다.

“아빠.”

아빠는 그날따라 유독 환하게 웃는 것 같았다. 아빠 얼굴의 모든 주름살이 휘어졌다. 같은 테이블의 아저씨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쭈뼛하게 서 있다가, 아빠가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온 거 아니냐며 가보라고 했을 때 비로소 몸을 움직였다. 아빠가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온 거 아니냐며 어서 가보라고 했을 때 비로소 몸을 움직였다. 회사 사람들이 자리 잡은 테이블에 돌아가자, 앞에 앉은 직원이 아까 아저씨들 있는 테이블에는 왜 있었던 거냐 물었다.

“아, 저희 아빠예요.”

다른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아빠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빠 또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덩치 큰 과장님은, 내가 일을 싹싹하게 잘한다며 큰 소리로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빠는 짧은 인사를 하곤, 다시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이어갔다.


그날은 퇴근길에 빵집에 들렀다. 단팥빵, 슈크림빵, 그리고 아빠가 좋아하는 거칠거칠한 표면의 소보로 빵을 담았다. 그날 아빠와 함께 소보로 빵을 나누어 먹었는지, 어떤 맛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빠 옆에 앉아 있던 그 순간만이 기억에 남았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아빠는 내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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