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홍상수
요새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요?
다들 만나고 살잖아. 필요하기도 하고 나도 전엔 많이 만났지 사람들 만나는 거 좀 피곤하긴 하지
영화에서 감희는 세명에 여자에게 방문합니다.
그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로 영화는 진행됩니다.
홍상수에 영화들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소소한 대화들 중에 처음 감희가 방문한 영순 선배와 나눴던 저 대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새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요?”라는 감희에 질문에 영순은 “다들 만나고 살잖아. 필요하기도 하고 나도 전엔 많이 만났지 사람들 만나는 거 좀 피곤하긴 하지”라고 대답합니다.
살아가면서 인간관계만큼 우리에게 자주 질문을 던지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드물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날에는 혼자임을 견딜 수 없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곳에서 몸서리치게 고독함을 느끼며 혼자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태어난 날부터 죽음이라는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어떤 이는 느리게 또 어떤 이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과정이라서 일까요
우리는 자주 외롭고 또 슬프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 긴 여정에는 많은 사람들과의 작고 큰 관계들이 형성되고 유지되며 때로는 붕괴되어 가기도 합니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은 점점 누적되어 있을 테니 어느 순간부터는 작은 거슬림에도 관계에 피로감을 유독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도망친 여자’에서 그녀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친 걸까요?
그리고 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녀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영화는 어떤 설명도 덧붙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예전에 연인이었던 선배와의 대화 이후에 건물을 나와서 다시 갈 곳을 찾지 못한 듯 나왔던 emu 건물 지하에 영화관으로 들어온 그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눈앞 스크린에 펼쳐지는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그녀의 사연이나 상황은 설명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그녀의 모습은 저마다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둡니다.
요즘 들어 머릿속에 자주 떠돌아다니는 문장이 있습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내가 이걸 어디서 들었지 하고 검색해 보니 베르세르크라는 명작 만화에 나왔던 대사였더군요. 제가 본적도 베르세르크에 명대사를 어떤 연유로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 마지막 감희에 모습을 보고도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집이 있는데 집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그 막연한 느낌을 느낄 때면 저도 감희처럼 누군가를 만나 두서없는 이야기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밤새 술을 마시며 내가 술에 잠겨 없어질 때쯤에야 집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사정은 알 수 없고 영화가 끝난 뒤에 어떤 이야기도 덧붙여질 수 없지만 그래도 그녀가 도망쳐 온 곳으로부터 낙원을 향해 가는 여정의 시작이 엔딩 크레딧이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