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사랑의 역사’

작사 : 윤종신 작곡 : 윤종신, 이근호 편곡:나원주

by Plain Blank
가끔 떠올리던 이별 미뤄둔 숙제처럼 그 짧은 하루에 이별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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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을 하는 윤종신도 좋아하지만 음악가로서 윤종신을 참 좋아합니다.
제일 처음 그의 음악에 매료되었던 것은 음악 활동 초창기가 아니었습니다. ‘너에게 간다’가 들어 있는 앨범부터 그의 행보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전 앨범들에서도 ‘애니’ ‘잘했어요’등을 좋아했고 많은 사람들에 사랑을 받았던 ‘환생’과 ‘오래전 그날’ ‘부디’ 역시 어린 시절 들어 알고 있었지만 ‘Behind The Smile’ 앨범을 너무 좋아해서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반복해서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월간 윤종신을 시작하면서는 그의 행보는 더욱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매달 한 곡의 음악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 음악들을 모아 그해의 행보를 하나의 음반으로 발매한다는 한국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시도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사람은 음악을 정말 사랑하고 좋아하며 음악에 헌신하고 있구나 하는 경외심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행보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역사’는 ‘월간 윤종신’ 2013년 1월 호로 발표되었습니다. 2013년 ‘월간 윤종신’은 repair라는 부제를 달고 그동안 윤종신이 발표했던 곡들과 작사 또는 작곡으로 작업에 참여했던 곡들을 리메이크하는 작업들로 이뤄졌고 그 첫 달의 시작이 가장 윤종신 다운 가사와 멜로디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이 노래 ‘사랑의 역사’입니다.

노래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던 두 남녀가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사소한 문제들이 쌓이고 다툼이 늘어 결국 헤어지는 과정을 4분 38초의 시간 안에 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랑의 시작은 예감하기 어려운 돌발적인 상황들과 감정들이 뒤섞여 가면서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몇 번의 우연들이 반복되고 그 우연을 인연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헤어짐은 누군가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 우리의 역사가 이렇게 끝나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수면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점점 더 또렷하게 알게 되는 두 사람은 다툼이 늘고 이별이라는 둘의 만남에 비극적인 피날레를 향한 복선들을 본인들도 모르게 이어갑니다.


그리고 이별의 순간을 경험하면서 둘의 행복한 시간만큼이나 고통스럽게 이별에 과정을 겪어냅니다. 그 이별에 마음 아픈건 무게감에 차이와 시간의 간격이 있을 뿐 보통 연애를 겪어낸 사람들에게 대체적으로 동일하게 찾아오는 감정일 것입니다.

윤종신이 쓰는 발라드 가사는 사실 하나 버릴 것들이 없지만 이 곡은 특히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연애에 서사를 한 곡에 담았기에 더욱 한 문장 한 문장 아껴 읽고 듣게 됩니다.

하지만 유독 마음에 오래 남는 부분은 ‘가끔 떠올리던 이별 미뤄둔 숙제처럼 그 짧은 하루에 이별을 해낸다.’입니다.

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이별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도 그 수가 매우 적을 것입니다. 연애의 시작이 선사하는 설렘과 분주함에 정신이 팔려 그 순간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내 세상에 주인공이 된 두 사람 즉 나와 내 앞에 그 사람을 제외한 다른 세상에 대한 관심도 소홀해지는 시기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낭비하듯 썼던 사랑의 감정들은 시간이라는 무서운 친구를 만나 무뎌지고 날선 감정들에 깎이고 깎여서 그저 서로에게 일상이 되어버린 두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이 시기부터는 여전히 내 세상에 두 주인공이긴 하지만 장르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 틈에 다툼이 끼어들어 이별이라는 것이 불쑥 불쑥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 모두 완벽하게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세상 누구보다 가깝고 친밀한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그 과정에 불만들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작든 크든 하나하나씩 쌓여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버리고 두 사람 중 어느 누가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어도 이상하지 않을 순간이 오면 둘 중 성격이 조금 더 급한 사람 또는 참을성이 약간 더 부족한 사람은 가끔 떠올리던 이별을 미뤄둔 숙제처럼 어느 하루에 상대에게 선포하며 그 둘에 사랑은 하나의 과거가 되고 그들의 인생에서 다시 들춰보기 힘든 역사가 되어 버립니다.

가사와 멜로디 모두 훌륭한 곡이지만 나원주의 편곡 또한 원곡인 조성모 버전에 편곡보다는 좀 더 제 취향에 가깝고 조성모의 미성이 주는 부드러움보다는 조금 더 거칠게 후반부를 몰아붙이는 윤종신에 가창 역시 제 취향에 가까웠습니다.

너무 좋은 음악을 만날 때면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윤종신에 ‘사랑의 역사’는 저에게 그런 아름다운 곡 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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