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도저를 탄 소녀’

감독 : 박이웅

by Plain Blank
그러고 사는 거야 다 조금씩 참으면서 사는 거라고
자기 분수에 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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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서비스에 익숙해지면서 자주 선택 장애를 겪고는 합니다. 음식점에서 메뉴를 고민할 때도 어지간해서는 3분을 넘지 않는 나인데 OTT 메인 화면 앞에만 서면 왜 이리 약해지는지 찜한 영화 목록에서 이리저리 커서를 옮기며 한참 확인해 볼 때가 많습니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전해지는 정보량이 많아지면서 당연하게도 저건 나중에 꼭 봐야지 하는 영화가 많아지고 그렇게 쌓여만 가는 영화 리스트를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이제는 너무 좋은 영화들을 적당한 금액을 내고 구독을 하면 언제든 볼 수 있기 때문인지 더 많아진 선택지 앞에서 늘 고민만 하다 그냥 가볍게 유튜브 콘텐츠나 하나 보고 잠이 들 때나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영화 ‘불도저를 탄 소녀’는 찜한 영화 목록에서 스치듯 자주 봤던 포스터와 제목에서 느껴졌던 느낌과 예고를 봤을 때에도 뭔가 다이나믹하게 밀어붙이는 화끈한 영화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 화가 잔뜩 나 있는 주인공에 표정과 뭔가 긴박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박혁권 배우에 표정 거기에 영화 제목에 ‘불도저’가 들어간다니 뭔가 불의에 사건을 겪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주인공이 영화 내내 나쁜 놈들 뚜드려 패고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내용이겠구나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 망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현실은 아버지의 사고에 대한 미스터리 추리극처럼 흘러갑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들이 이어지며 아마도 사춘기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여주인공’은 시작부터 끝까지 화가 나있습니다. 그 나이 때는 안 그래도 모든 어른들이 밉고 싫을 텐데 직접적인 문제들이 본인의 잘못과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문제들이 뒤섞여 그 화는 점점 데시벨을 높여 갑니다. 제가 상상했던 영화는 영화적 판타지와 같은 상상일 뿐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이야기들이 진행됩니다. 영화 시작부터 분노에 차 있던 주인공은 후반부로 갈수록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지만 매번 스스로의 한계점에 부딪치며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제는 자신이 보호자며 어떻게든 잘 지켜내려 하는 어린 동생마저 누나를 지키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에 게이지는 이제 제어할 수 없는 단계까지 올라가자 이 영화에 제목처럼 그녀는 불도저를 타고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가끔 어떤 작품들은 내 예상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불만족스러울 때가 있고 때로는 만족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영화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그냥 완성된 형태로 그 자리에 있는 것뿐입니다. 또 알폰소 쿠아론 감독에 ‘로마’ 같은 영화들은 마지막 5분 10분을 위해 2시간 가까이를 점층적으로 감정을 쌓아 올려 폭발 시켜 큰마음에 파도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클라이맥스가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주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시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태어나 사회에서 성인으로 인정받는 나이까지 성장하는 동안 세상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들고 거대한 분노에 사로잡히는 시기가 각자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그 감정들을 세상에 내보이고 누군가는 마음속으로 꾹 눌러가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갑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어른들은 그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 소녀는 그들이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만 그건 그저 본인만 중요하고 본인에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대부분에 나이가 들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나쁜 마음들에 동화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인정하고 자신에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도저를 탄 소녀도 패스트푸드점에 서 있던 마지막 장면처럼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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