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왕가위
‘내게 레인코트가 필요했을 때 그가 내 곁으로 돌아왔다
매일 비가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왕가위 감독에 대표작인 ‘중경삼림’과 가까운 시기에 개봉했던 ‘타락천사’는 ‘중경삼림’과 비슷한 듯 다른 작품입니다. 영화 자체가 ‘중경삼림’에 마지막 에피소드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와 함께 9개월 기간 동안 동시에 촬영되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단순한 첫인상은 ‘중경삼림’에 비해 퇴폐미는 더해졌고 카메라 앵글이나 색 처리는 더욱더 과감해졌습니다. 두 남자 주연인 여명이 연기했던 던 ‘황지민’과 금성무가 연기했던 ‘하지무’에 이야기는 단순 나열인 듯 싶지 지었지만 어떤 상황에서 그 둘은 만나기도 하고 ‘황지민’에 파트너였던 그녀를 ‘하지무’가 마지막 장면에 만나기도 하면서 큰 줄기에서는 두 이야기지만 인물에 관계는 같은 지역과 같은 공간을 공유합니다.
영화 시작부터 강하게 풍겨오는 세기말 감성에 2023년에 처음 맞이하는 90년대 중후반 영화는 처음에는 이질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 이해되지 않는 캐릭터들을 마지막까지 보다 보면 한 명 한 명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걸 보니 99분에 시간 동안 ‘타락천사’가 저를 완벽하게 설득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일 밤 거리엔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라는 ‘하지무’에 대사처럼 제정신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과 사랑에 다친 청춘들에 모습이 네온 사인 간판으로 뒤섞인 그 시절 홍콩에 거리 위에 휘청거리며 뒤엉켜집니다.
오래전 영화들은 지금은 많은 것이 변해버린 그 시절에 그 도시에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보고 있노라면 한 번도 가보지도 않았던 그 시절 홍콩에 모습이 그리워지는 묘한 감정이 듭니다. 그만큼이나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 홍콩에 젊고 반짝이는 마지막 순간들이 과감한 연출들 속에 또렷하게 기록되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낭만 비슷한 감정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타락천사’는 음악과 함께 진행되는 롱테이크 씬들이 많습니다. 음악은 흐르고 그 프레임 속에 갇힌 듯 그 장면 속 배우들 만이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 머물러 있고 그것이 음악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중경삼림’에서 금성무가 연기한 '경찰 223'은 사랑에 유통기간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 말했지만 ‘타락 천사’에서 그녀에게 첫사랑에 빠진 금성무가 연기한 ‘하지무’는 ‘아직 그녀가 조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마음 아프지만 모든 것에는 유통기간이 있다고들 하지 않냐’면서 그녀가 가지는 이 감정이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독백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짝사랑하는 이에게는 그보다 더 짧은 유통기간이 주어지고 둘은 그렇게 멀어집니다.이야기 끝에 ‘하지무’와 과거 ‘황지민’의 파트너가 같은 공간에서 만나고 적당한 타이밍에 엔딩 송이 흘러나올 때 소름이 돋는 것을 보니 왕가위 감독에 선곡은 언제나 틀림이 없었고 그 장면과 음악에 호흡 또한 이토록 완벽하구나 하고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경삼림’에서 흘러나왔을 때 느낌보다 훨씬 더 큰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니 장면과 음악이 만나는 시점에 따라서도 우리에 감정들에 이렇게 큰 차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고 며칠 동안 그 노래 Flying Pickets에 ‘Only You’를 떠올리고 흥얼거리면서 영화 속에 장면들을 떠올리고 그 감정들을 곱씹는 것을 보면서 영화와 음악이 줄 수 있는 큰 감동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초반에는 두서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들에 불안함을 느끼게 됐지만 왕가위 감독 작품답게 확실한 감독의 색과 매력적인 주인공들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향수까지 더해져서 저에게 영화 ‘타락 천사’는 생각날 때마다 꺼내어 찾아볼 작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