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남해여행
다도해를 좋아한다. 한눈에 하늘과 바다와 산이 함께 보이는 푸른색들의 조합. 낮은 경사의 해안 비탈길을 지그재그로 운전해 달리면 눈앞에 보이는 듬성듬성한 섬들이 자아내는 독특한 풍경. 그중에서 남해는 여수보단 덜 북적이고 더 자연 그대로이거나 전원적인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 좋다. 5년 전에 왔었는데 그 뒤로도 생각이 많이 난 여행지이다. 5월, 긴 연휴를 맞아 부모님과 남동생과 함께 여행을 계획했다.
아이들과 캠핑을 하고 싶다 하시던 아빠의 말을 기억해서 남해 제일 아래쪽 동네인 남면에 위치한 한 해수욕장에 위치한 펜션을 찾았다. 펜션 바로 앞에 아담한 모래사장이 있고 캠핑할 수 있는 데크와 소나무숲이 있는 곳이었다. 애석하게도 여행을 떠나는 첫날부터 비가 많이 왔다. 텐트를 치고 바비큐를 하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펜션에 짐을 풀고 나니 조금 막막해졌다. 단지 캠핑장 바로 앞이라는 이유로 조금 낙후된 숙소여도 감안하고 빌렸는데 폭우가 내리다니. 김이 샜다.
장거리 운전을 한 두 남자를 위해 잠시 휴식하다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랭이마을을 보고 오기로 길을 나섰다. 마침 비가 폭우 수준에서 좀 사그라들어 우산 쓰고 걸을 정도가 되었다. 다랭이마을은 남해 특유의 계단식 논을 경작하는 농작마을이다. 비가 와도 돌아다니려고 우비와 장화를 챙겨 왔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가파른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는 동안 비 오는 바다와 여러 농작물들이 심긴 논밭들이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구름 낀 하늘과 높아진 바다가 운치 있었다.
나를 앞서 엄마가 유호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 한쪽이 뭉근해진다. 이 둘의 조합은 내게 언제나 찡한 구석이다. 지금은 이미 초등학생인 유호와 다섯 살이 된 윤아, 이 둘을 혼자서도 거뜬히 건사하는 나이지만 내가 초보 중 왕초보이던 시절, 내가 배부른 임산부이던 시절, 학생이었던 시절, 내 육아는 엄마의 도움이 필수였다. 유호를 키우던 시절은 준영과 나, 엄마가 함께 달리는 삼각 달리기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유호는 할머니랑 둘이 보낸 시간이 많다. 엄마 아빠가 병원에 동생 낳으러 간동안 이 둘은 오늘처럼 저렇게 손을 잡고 동네를 걸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항상 자신이 유호의 일 번 팬이라고 말한다. 유호는 할머니가 자기를 언제나 예뻐한다고 말한다. 우산을 나눠 쓰고 시골길을 걸으며 저들은 금방 자기 둘만의 시간에 빠져들어간다.
비를 많이 맞고 독일마을에서 간단한 저녁과 독일맥주도 한잔씩 맛본 뒤 숙소에 돌아오니 다들 녹초가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먼 길을 달려온 첫날밤은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여행 중 제일 피곤한 순간이다. 게다가 예상보다 낡은 숙소 형편 때문에 더욱 심란한 밤이었다. 아침도 해 먹으려고 두 가정에서 식재료도 잔뜩 실어왔는데. 사실 오 년 전 남해 여행 때도 숙소 컨디션에 살짝 놀랐던 경험이 있는지라 큰 기대는 안 했지만 밥 해먹기도 난감한 부엌 상태가 문제였다. 우리 집에서 가장 똑 부러지는 준영과 그런 준영보다 더 고수인 할머니가 펜션 사장님에게 몇 가지 청소도구와 조리도구 교체를 요구하고 왔다. 이럴 땐 어른과 함께 여행한다는 게 그렇게 든든할 수 없다.
그렇게 방을 정비하고 이부자리를 펴고 보일러를 켠 뒤 아이들을 토닥이고 있을 때, 어둠 속에서 준영이 작게 외쳤다.
“큰일 날 뻔했다.”
오래된 보일러가 합선이 됐는지 콘센트가 타버려 연기를 내고 있던 것이다. 다행히 잡음과 연기냄새로 일찍 알아차려서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았지만 덕분에 가족들 각자 반쯤 뜬눈으로 보초 서듯 밤을 보냈다. 피곤에 피곤이 더해지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아이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란에 잠이 깼다. 몇 신지 물어보니 8시도 되지 않은 시각, 이미 할머니와 아이들은 해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다. 해변을 향해 있는 통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말 그대로 바다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언제 그런 무거운 비가 내렸느냐는 듯 투명한 햇빛이 내리쬐는 청명한 아침이었다. 숙소에 대한 모든 불만과 불안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모든 것이 용서되는 공기와 풍경이었다. 엄마가 부엌 집기들을 모두 씻고 소독해서 아침을 차려주시고, 아이들은 그동안 밖에서 뛰어놀았다. 부모님이 어제 오는 길에 사 오신 전복을 볶은 정갈한 반찬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콩나물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을 다 먹고도 8시 반, 남동생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빠와 준영은 해변 캠핑장에 텐트를 쳤다. 회사 동료가 쓰던 텐트를 그냥 거저 준 것인데 크기가 너무 커서 적어도 성인 어른 둘은 같이 쳐야 했다. 이렇게 큰 텐트를 처음 쳐보는 아빠와 준영은 거진 한 시간 만에 완성한 텐트를, 다시 접기로 했다. 강풍이 불어 폴대를 두 개나 분질러먹고, 여러 번 텐트가 거대한 공처럼 바람이 가득 차 바다로 날아가버릴 뻔한 위기를 겪은 뒤였다. 둘 중 한 명이 온 힘을 다해 붙잡지 않았으면 한 명은 텐트와 함께? 텐트를 타고? 날아갈 뻔한 강풍이었다. 이 실패로 손주들과 캠핑을 하고 싶었던 할아버지의 로망이 좌절되었다. 아빠는 손주들을 보면서 우리 남매 어렸을 때를 한번 더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도 코펠이며 캠핑테이블, 의자 등 아빠의 애장품인 온갖 캠핑용품들을 총동원하셨다. 할아버지 가방에서 끝없이 나오는 캠핑용 위스키잔, 주걱, 한쪽 끝은 포크 다른 한쪽 끝은 숟가락인 도구 같은 처음 보는 물건들에 아이들은 신이 났다. 여하간 텐트 치기에 실패하는 바람에 종종 캠핑을 다녀보려 했던 우리의 의욕도 크게 꺾였다.
한 시간의 헛수고를 정리하고 해변에 캠핑의자와 테이블을 펴고 앉았다. 아이들은 이미 한 시간째 자기들끼리 모래놀이로 바지가 엉덩이까지 젖어있었다. 남해 바다는 파도가 거의 없고 물이 맑았다. 게다가 바로 앞에 작은 섬들이 산처럼 둘러 있어서 바다가 아니라 호수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까운 카페에서 커피를 사 오고 해변에 앉아 있으니 시간이 게으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작은 모래성을 쌓아놓고 자꾸 밀어닥치는 파도를 무찌른다며 뛰어다니는 두 아이들의 의미 없는 즐거움이 귀여워 어른들은 많이 웃었다. 나는 읽으려고 챙겨갔던 보르헤스의 책을 비로소 들춰 볼 수 있었다. 쓸데없이 텐트를 쳤다 치우고,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바쁘게 싸워도 아직 오전 열 시밖에 되지 않은 이런 무위, 이런 무용함. 이런 무료함 때문에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부모님과 여행하면 나는 나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는다. 온통 부모님에 대한 걱정, 애잔함, 추억 같은 것이 머릿속을 채우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여행을 할 때마다 시간이 얼마나 빠른 것인가 실감한다. 함께 한 지난 여행 때로부터 벌써 육개월이나 부모님이 늙으셨다는 사실, 이렇게 두 번 함께 시간을 보내면 일 년이라는 시간이 훅훅 가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래서 그 시간을 천천히 가라고 붙들고 싶어 여행을 한다.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피곤함을 무릅쓰고서도, 그 많은 일들을 해도 길게 흘러가는 느긋한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그리고 헤어질 땐 꼭 이런 당부를 한다. 또 여행해요, 엄마 아빠. 올해 가기 전에 또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