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치의 '너에게 못 했던 내 마지막 말은'을 들으며 퇴근하는 중이었다. '아직 남았을까. 못 잊을 이유가 남아있을까'라는 가사를 시작으로 퇴근 감성에 젖어들 준비를 하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애꿎은 바람들은 말도 안 되는 네 말을 또 믿고 싶게... 윤석열 정부는!! 현 사태를 책임지고!!'라는 가사가 있었던가. 뒤를 돌아보니 젊은 여자 한 명이 마이크를 통해 외쳤고 양 쪽으로 두 사람이 탄핵 서명을 받고 있었다. 퇴근길이라 횡단보도에는 사람이 가득했는데 다들 한 번씩 쳐다보고는 맞은편 자신들의 보금자리인 아파트 단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도 마찬가지로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로 다시 집중을 돌렸다. '생각이나 그 모든 게~ 나 어쩌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야 인마!! 조용히 안 해!!' 이런 가사는 정말 아닌데 말이다. 내 옆에 있던 중년 남성 둘이 탄핵을 외치는 젊은 여성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고개가 돌아갔고 그 광경에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빨리 신호등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다비치, 탄핵, 야 인마가 콜라보한, 더 이상 노래가 아닌 소음에 뒤통수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나 어쩌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에 뒤이어 가사를 붙이자면 ‘왜 저래 진짜!’.
횡단보도를 건너 조용한 지하철 역사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노래를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 중년 남성이 개찰구 봉에 다리를 걸쳐놓고 철봉 놀이라도 하려는지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다가가고 싶지 않았지만 집에 가려면 개찰구는 지나쳐 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가까이서 그의 만행을 보게 되었다. 술에 취한 건지 의도적으로 무임승차를 하려는 건지 안 넘어가는 개찰구 봉을 넘어가려고 끙끙거리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다시 한번 '나 어쩌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왜 저래 진짜!’.
그 하루뿐이 아니었다. 왜 저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매일, 어느 곳에나 있다. 처음에는 궁금했다.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했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길래, 분명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을 살고 있기에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것인가, 그래서 이상하게 보이고 신경이 쓰이는 걸까’하며 나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하지만 말 그대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이기에 결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한 것이 그들은 주위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예민한 사람들만 괴로울 뿐이다.
‘예민한’ 사람들 중 한 명으로서 ‘왜 저래 진짜’에서 끝나지 않고 그 순간의 잔상이 계속 어른거리고 신경이 쓰였다. 유독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 날은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의심까지 들었다.
저들이 정상인 것이고 그들의 행동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내가 문제인가 하는 자기 검열까지 가기에 이르렀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위가 콕콕 쑤시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생각하고 더 이상 깊게 파고들지 말자며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배우도 아니고 감정 이입을 해서 대신 그들의 삶을 연기할 것도 아닌데 왜 이러나 싶었다. 사람이 싫어서 그 연결을 끊어내려고 하고 있는데 자꾸만 선이 연결되어 끌려다니는 꼴이 됐다. ‘내가 내 살 파먹는 짓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무관심해지면 되는 일이다. 이렇게 간단한 해결책이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저절로 눈이 가는 것을, 들리는 것을, 감정이 쓰이는 것을. ‘왜 저래 진짜’ 한 번 내뱉고 빨리 머릿속을 환기시키는 연습이 필요했다.
바깥에서는 무조건 귀에 이어폰이 장착돼 있어야 한다. 위기의 순간이 다가올 때 빠르게 청각으로 주의를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제일 신나는 음악을 선택하고 음량을 최대한 올린다. 바깥사람들의 목소리가 파묻힐 정도로 말이다. 그러면 음소거한 상태로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장면이 펼쳐지는데 그게 꽤나 웃기게 보인다. ‘왜 저래 진짜’에 묻어있던 짜증의 감정은 어이없이 웃김으로 가벼워진다. 직장에서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이어폰의 힘을 빌릴 수가 없다. 그럴 때는 마인드 세팅을 한다. ‘저 사람은 인생이 고달플 거야. 나 말고도 다른 이들이 따가운 눈총을 보내겠지’하며 상대에게 동정심을 보냈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고 나면 빠르게 그들에게서 등을 돌릴 수 있었다.
본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 평화로운 퇴근길을 위해 ‘왜 저래 진짜’에 오늘 하루 동안의 안 좋았던 감정을 실어 보내 그들의 뒤통수에 살포시 얹어보자. 그리고 빠르게 도망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