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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구슬 Nov 19. 2024

미라클은 없지만 굿모닝

‘미라클모닝’, ‘갓생 살기’ 이런 거창한 포부를 가지기엔 그저 요가원을 갈 수 있는 시간대가 새벽반 밖에 없어 시작한 새벽 기상이었다. 물론 오전반도 있지만 너무 밝은 햇살을 받으며 요가를 하는 건 조금 부끄럽다랄까, 저녁반은 늦은 퇴근 시간 때문에, 결국 남은 선택지는 새벽반이었다. 새벽 감성을 좋아하는 F인으로서 오전 2시나 오전 5시나 새벽은 마찬가지이므로 감성에 취해 늦게 잠자리에 드는 것보다는 기왕이면 바이오리듬에 맞추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첫차를 타기 위해 5시 반이면 바깥으로 나선다. 겨울에 가까워지는 요즘 이 시간대에는 아직 밤하늘이 자리하고 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비몽사몽 하며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서면 고요하고 차분한 바깥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아직 준비 중인 해를 대신한 조명이 역사 안을 밝혀주고 환해진 역사 안에는 하루의 시작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곧 도착한 지하철 안에는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이 좌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미지출처-pinterest)

미처 깨지 못한 잠이 다시 쏟아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람들, 매일 옆에 출근 좌석을 하나 미리 맡아두는 아저씨와 그의 친구의 소곤거리는 대화, 첫차를 타고 이제야 귀가하는 홍대 젊은이들 등등 이른 새벽 첫차에서만 볼 수 있는 잔잔한 장면들이다. 곧 맞이할 아침을 위해 각자의 에너지를 최대한 비축해 두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그들 덕분에 조금 모인 에너지로 잠을 깨우고 요가로 몸까지 깨워 좀 더 멀쩡해진 상태가 된다. 밝아진 바깥에서 진짜 아침을 맞이하고 요가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햇빛으로 비타민D까지 보충하면 80% 충전, 샤워하고 90%, 카페인까지 넣어주면 100% 완충완료다. 빵빵해진 에너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의지가 샘솟는다.

(이미지출처-pinterest)

‘아침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바닷가. 맑은 공기 마시며 자아 신나게 달려보자.’ 피구왕 통키처럼 세계 제일의 피구왕이라는 거창한 목표는 없지만 우선 세탁기 먼저 돌려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따스한 햇볕 덕분에 아침 감성을 한층 끌어올리고 바닥에 있던 머리카락들도 햇빛에 의해 나의 시야로 끌려온다. 그렇게 다음 순서는 청소기 돌리기다. 가전제품을 돌리고 나면 이젠 내 머릿속을 돌릴 차례다. 주로 이 시간대에 글을 쓰기도 하고 본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도 하며 새벽에 채운 에너지를 조금 떼어 쓴다.

이른 기상으로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많이 앞당겨졌다. 퇴근 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3시간 남짓이므로 빠르게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소화시키느라 조금 움직이고, 씻고 나면 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렇다 보니 남들 퇴근 후에 하는 재미난 일들은 아침에 하게 되었다. 그저 퇴근 후에 해야 할 일들이 아침으로 시간대가 옮겨졌다는 것 외에는 미라클이라고 외칠 만한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이미지출처-pinterest)

특별함을 만들고자 한다면 아침에만 여는 빵집에서 갓 나온 촉촉한 빵을 산다거나 저녁에 잠 못 들까 봐 마시지 못했던 커피를 진하게 내려마시기, 날씨가 좋은 날에는 따릉이를 타며 유산소 할당량 채우기 정도의 소소한 보람이다. 하지만 소소함이 지속되어 쌓이면 어느 순간 묵직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별 다를 것 없는 아침이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전날 잠자리에 누워서부터 내일이 오기를, 어서 아침이 오기를 바라며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은 것 마냥 ‘오 미라클’ 하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기적은 없지만 퉁퉁 부은 얼굴에 깊게 박혀 있는 눈을 힘겹게 뜨며 거울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을 향해 ‘굿모닝’을 외치며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시작해 본다. 아침을 맞이하고 무난하게 시간을 보내며 무탈하게 지나가는 하루가 기적이 아닐까.   

(이미지출처-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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