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왔음을 느끼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두꺼운 이불을 덮었음에도, 두꺼운 수면양말을 신었음에도 잠들지 못하는 밤이 점점 늘어난다면 다시 그 계절이 돌아왔다는 얘기다. 겨울은 수족냉증러의 손 발을 끊어내는 아주 가혹한 계절이다. 얼어붙은 손 발을 깨우기 위해 한껏 움츠렸다 펴기를 빠르게 반복하다 보면 모은 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깨는 점점 움츠러든다. 가뜩이나 쭈구리 인생 덕분에 어깨는 이미 오그라들었는데 요가로 조금 펼쳐놓으면 겨울은 다시 양쪽 어깨가 앞에서 서로 만날 듯 친절하게 한 뼘 더 좁혀준다. 그 상태로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밖으로 나가면 흡사 이족보행하는 콩벌레처럼 보일 것이다.
콩벌레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추위에 맞서 출근을 하고, 퇴근 후 장도 보며, 집으로 들어왔을 때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악취로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버리러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하며, 쿰쿰해진 실내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사방의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집 안에서 벌벌 떨어야 하며, 겨우 문을 닫고 실내 온도가 사람 살만한 온도로 올라오면 콩벌레는 그제야 허물을 벗고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가을의 색감이 남아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눈이 모든 가을을 덮어버렸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겨울을 맞이했다. 11월의 폭설은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도 미리 세탁해 둔 콩벌레 옷 하나가 걸려있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새벽 다섯 시 반, 아무도 걷지 않은 길에 첫 발자국을 내며 어기적어기적 요가원을 향해 걸어가는데 첫눈이 와서 마음이 들뜨다가도 갑작스럽게 가을을 앗아가 버린 겨울이 미워졌다. 겨울이 오기 전에는 여름의 초록빛을 지워버린 가을이 미웠다. 하지만 겨울이 온다는 건 일 년의 끝에 서게 됐음을, 이룬 것도 없이 별 다른 목표도 없이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니 두려워졌다.
그래서 가을이 밉다가도 겨울이 오지 않기를 내심 바랐다.
오지 말라고 밀어낼 수도 없는 겨울은 그럼에도 다시 찾아왔다. 하룻밤 사이 폭설로 누가 봐도 겨울이라 주장하는 겨울 아침을 맞이했다. 어쩌겠는가. 끝나가는 2024년과 이별할 준비를 해야지. 나의 연애 스타일대로 이별을 하자니 쌍욕 하며 과거를 싹 다 치워버리는 매몰찬 방식을 택할 정도로 올해가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았다. 올 초로 돌아가자면 새해 첫날은 친구와 일출을 보며 무탈함을 빌었고, 그 덕분인지 별 다른 사고 없이 12월까지 온 거라 믿고 싶다. 출퇴근을 반복하는 일상을 보내다 출근길에 피어 있는 벚꽃을 보며 봄의 중간을 지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틈틈이 봄의 기운을 누렸다. 그 기운으로 여름에는 PT를 받아 근력을 쌓았고, 쌓인 근력으로 주 3회 겨우 나가던 요가를 매일반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용기를 냈다. 푸릇했던 이파리들이 퍼석해지는 가을에 들어서면서 마음이 울적했지만 가을은 수확과 결실의 계절이다. 수확의 결과물은 아직 보잘것없지만 약간의 가능성은 보였다. 꾸준히 하면 결실을 맺을 수 있겠다는 가능성 말이다. 그러한 확신 덕분인지 가을이 주는 울적함을 금방 가셨고 처음으로 온전하게 가을을 즐겼다.
벌써 12월에 들어섰다는 사실이, 올 해의 마지막 달이라는 사실이, 가을이 가버렸다는 사실이 아쉽고 미련이 생기지만 그럼에도 겨울은 왔기에 맞이할 준비를, 이별할 준비를 하려 한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위해 출퇴근 길에 캐럴을 듣고,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주문하고, 크리스마스에 볼 영화들을 고르기 시작했으며, 크리스마스에 먹을 케이크를 고민하며 온통 크리스마스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하니 금세 겨울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12월의 마지막 날은 2024년과 잘 이별하기 위해 요란스럽지 않은 하루를 보내려 한다. ‘어차리 새해에 떠오르는 해나 내일의 해나 똑같다’라며 집에서 심드렁하게 배나 긁고 있을 나를 상상하니 그건 그거대로 아니다 싶어 집 근처 일출 명소라도 찾아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