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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구슬 Dec 10. 2024

친절한 불안씨

똑똑. 안녕하세요. 저는 불안인데요. 잠시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가도 될까요?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요. 그럼 준비가 끝나면 알려주시겠어요? 다시 방문드릴게요.

이토록 예의 바르고 친절한 불안이 있다면 기꺼이 마음의 문을 열어줄 것 같다. 하지만 불안은 예고도 없이 들어와 온몸 구석구석을 제 집처럼 어질러 놓는다. 갑작스러운 침입자 덕분에 심장은 두근두근, 눈알은 좌, 우, 위, 아래로 흔들리며 손과 발은 초조함에 달달 떨리기 시작한다.

불안은 마음이 편하지 않고 조마조마한 상태를 말한다. 사전적인 의미의 불안이 이렇다면 살면서 불안하지 않은 날이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별 탈 없이 살아가는 걸 보니 백해무익한 감정은 아닌 듯하고 그저 불친절하고 서툰 감정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귀엽게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인사이드 아웃 2에 나오는 불안이를 떠올려 보면 (물론 최종 빌런이기는 하지만) 큰 눈망울로 라일리의 미래를 걱정해 주는 모습이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고 귀엽다.

나에게 있어 불안의 근원은 오지 않은 미래를 지레짐작함과 타인과의 비교에 있다. 둘 중 하나만으로도 힘든데 타인과의 비교로 저 아래 구덩이에 처박혀 있을 나의 미래까지 상상하고 오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정해진 미래를 보고 온 것처럼 이상한 확신이 들며 현실이 까마득해졌다. 몸은 현실에 있는데 정신은 미래에 가 있어 정작 해내야 할 일이 많은 현실을 살아내질 못 했다. 당장의 불안한 마음을 해소시키기 위해 하던 일을 내팽개 치고 평소에는 하지 않을 법한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해소법으로 좋은 결말을 만들어 냈는가 하면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허다했다. 대부분 후회하고 이불 킥하는 결말이었다.

조급해진 마음은 항상 섣부른 선택을 하게 했고 후회를 나았다. 불안이는 이러한 결말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보다 나아지고자 한 선택이 내가 상상한 최악의 미래에 더욱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산불은 담배꽁초 하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주변의 건조한 환경과 바람이 불씨를 키워 옆 나무로, 또 그 옆나무로 계속해서 옮긴다. 그렇게 담배꽁초에서 시작한 작은 불씨는 산 하나를 다 태울 정도로 큰 불이 된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에 불안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면 초기 진화가 중요하다. 하지만 불안을 알아챘으나 주변 환경에 휩쓸려 진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한동안은 타인과의 비교로 불안함 속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자며 불안에 잠식당하는 많은 밤들을 보냈다. 또래의 지인들은 이미 자리 잡고 월 천이상의 수익을 벌고 있으며, 든든한 가족이 생겨 둥지를 틀었으며 이렇듯 보통의 속도대로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작았던 불안의 불씨는 급속도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불씨가 옆에 있는 열정만 태우면 좋으련만 초조함과 혼란스러움, 열등감으로 번져가 결국은 무능함으로 내 자신을 태워버렸다.

불안이 몸을 잠식하면 대본에도 없는 애드리브를 남발한다. 그 애드리브는 ‘오케이 컷!’보다는 ‘컷! 제정신이야!’의 타박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안으로 인해 쌓은 이불킥 포인트를 현금화할 수 있다면 두 팔 벌려 불안을 환영할 텐데 머리를 감싸 안아 쥐어뜯기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안에서 나온 섣부른 선택들이 가끔 빛을 볼 때가 있다. 잠들어 있던 용기를 깨워 발걸음을 떼게 만들거나 시기적절하게 찾아온 운까지 더해지면 새로운 길로 걸어가게 만든다. 어쨌든 불안은 게으른 나를,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니 마냥 싫어할 수만은 없다. 다만 불안이 내 몸을 잠식하여 우위에 서지 않도록 조절이 필요하다. 불안이 부정적인 감정에 불을 붙이지 않도록 적절하게 타올랐다가 꺼지도록 말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며 지레짐작 결론짓기보다는 일단 오늘을 살아내며 출근을 할 것이며 운동 할당량도 채우며 나의 루틴을 해낼 것이다.

출근했으니 오늘의 일당은 벌었으며 운동을 했으니 체력이 1%는 올라갔을 것이다. 이 정도면 오늘의 불안은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금잔디 명예 소방관을 자처하던 지후 선배는 금잔디의 불안을 꺼줬을까. 기왕 불 끄는 김에 저의 불안도 꺼주실래요 지후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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