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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잘 가 크리스마스

by 문구슬 Dec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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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푸름이 가시고 가을의 붉음이 서서히 물들 때쯤 벌써 산타클로스의 붉은색 옷을 기다리며 캐럴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올해가 반이나 지나버렸음에 마음이 울적해져 가을 타면서 마음도 타들어갔다. 크리스마스라는 빅 이벤트가 남아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직도 설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어른이 되어도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게 만드는 기적의 하루다. 물론 이제는 셀프 선물이지만.
(이미지출처-pinterest)

크리스마스를 누구와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혼자서 더 재밌게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내내 그랬다. 크리스마스가 아닌 날들 속에서도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조용히, 끄적끄적, 사부작사부작, 잔잔한, 일상 같은, 흐름을 깨지 않는, 정적인 것들, 늘 그 자리에 있는’ 이러한 수식어들이 붙을 만한 요란하지 않음을 선호했다. 그러면서 그 수식어들과 잘 어울릴 만한 것들을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저 일상처럼,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조용하게 보내려 한다. 약간의 들뜸과 설렘을 조금 가미한 일상 같은 크리스마스.
(이미지출처-pinterest)

‘안녕 크리스마스야. 만나서 반가워. 가을부터 너를 기다렸어. 너에게 줄려고 준비한 선물이 있는데 잠시만. 그전에 이 노래 들으면서 기다려 줄래? 내가 너를 만나러 오는 길에 들은 노래들이야’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부터 쓸쓸함을 데우기 위해 캐럴을 듣기 시작했다. 성냥팔이 소녀가 추위를 잊기 위해 성냥을 태우는 것처럼 마음에 스며든 추위를 쫓아내려 캐럴을 피웠다.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처럼 그토록 원하는 당신은 없지만 you대신 로또 당첨으로 개사해 부르는 타락한 어른은 동심을 잃었음에도 아이처럼 웃었다. ‘Jingle Bell Rock’을 들으면 징글징글한 출근길의 발걸음이 그나마 가벼워졌고, ‘White Christmas’ 덕분에 오후 내내 긴장했던 몸이 풀리며 퇴근길 전철이 만원이더라도 포근하게 갈 수 있었다.

캐럴을 듣다 보니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왔다. 반가움과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는 한편 올해가 다 끝나간다는 사실을 물리적 시간으로 실감하니 마음이 울적해졌다. 외로워서 자주 울적해지나 싶어 사람들을 만나 크리스마스를 보낼까 싶다가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에너지 소모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앞에 두고 사람들과 시선을 맞춰야 한다는 상황이, 궁금하지도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짜내야 한다는 상황이 더 울적했다. 한 살 더 먹는다는 현실을 부정하고픈 마음에서 오는 울적함일지니, 어차피 내일은 오고 또 새해는 밝을 것이며 시간을 계속해서 흘러갈 것이다. 어제와 다름없이 흘러가는 하루일 텐데 예수님의 생신이라 특별한가 생각하다가 부처님 생신에는 별다른 특별함 없이 지나갔다는 사실에 ‘그날이나 이날이나 똑같지 뭐’하며 금방 울적함을 털어냈다.

올 해의 크리스마스는 수요일로 평소처럼 아침에 요가를 다녀오고 아침 겸 점심으로 냉털 요리를 해 먹을 것이다. 그리고 후식으로 수제 딸기 생크림케이크(이미 망해서 큰 대접에 놓고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한다)를 커피와 곁들여 먹으며 당충전을 하고, 결제할까 말까 망설였던 로판 웹툰들을 통 크게 결제하여 2차 당충전을 해 줄 것이다. 거북목이 뻐근해질 때쯤 바깥 날씨를 체크해 보고 나갈 의지가 생긴다면 도보로 갈 수 있는 서점을 가보려 한다. 그나마 가까운 합정역 교보문고나 여름부터 가려했으나 매번 갈 타이밍을 놓쳤던 진부책방스튜디오를 가야지.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 한 봉지를 사서 크리스마스를 위해 아껴두었던 영화들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할 것 같다.

이런 완벽한 하루를 보낸다면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깝지 않다. 내년에는 또 어떤 크리스마스가 찾아올지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잘 보내고 아쉽지만 새로이 찾아올 내년을 기약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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