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일 혹은 주 7일을 번갈아가며 일하다 보니 어쩌다 통으로 주말을 쉬거나 긴 연휴가 생기면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쉼과 여행 중 망설임 없이 쉼을 택한(쉼보다는 요양에 가깝지만) 직장인은 여행 갈 돈을 아껴 유튜브와 OTT 업그레이드를 시켰고, 배달 어플에서 최소 주문 금액 따위 신경 안 쓰고 먹고 싶은 음식을 멋지게 결제했다.
하루는 무조건 집에서만 보내야 하는 ‘집순이’이기에, 그리고 남은 하루 내지 이틀은 지도어플에 표시해 두었던 왕복 1시간 내의 소품샵 및 서점 투어를 해야 하기에, 그 일정만으로도 벅찬 거지 체력을 가진 탓에, 이제 해외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나의 상태에서 여행이라 하면 그저 쉬고 싶은, 심장 박동수에 변화가 없는 편안한 여행을 추구하게 됐다.
‘그렇다면 굳이 집 밖을 나갈 필요가 있을까. 인종을 떠나 그냥 사람 얼굴만 봐도 스트레스인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포근한 살 냄새가 배어 있는 이불속에서 여행 브이로그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내심 ‘그래도 가고 싶은가’ 하는 양가감정이 일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여행에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썼고, 그 경험을 나만 알기는 아까워서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에 껴 아는 척을 하고 싶었다. ‘나 거기도 가봤어! 여기 가면 이 음식 꼭 먹어봐야 해’ 식의 약간의 과시욕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 시절의 여행 스타일은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해!’였다. 블로그나 여행 카페에서 누군가 짜둔 여행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야 했고 일정대로 가지 않으면 나만 도태되는 듯 불안해서 그리고 ‘너 거기도 안 가봤니?’라는 말이 듣기 싫어 꾸역꾸역 가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 당시의 마음 상태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나’ 보다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에 목말라 있었으므로 보여주기식의 비중이 컸다.
현재로 돌아오자면 ‘나’와 노는 게 가장 재미있고 ‘나의 공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은 게으름과 편안함 덕분에 여행은 뒷전이 됐다. 여행이 가고 싶다가도 준비 과정을 떠올리면 다시 돌아눕게 된다. 누군가 계획을 다 짜둔 여행에 숟가락만 얹을 생각으로 파티원을 구한다? 그렇다면 자아가 없는 상태로 끌려다녀야 한다. 물론 자유도 없다. 차라리 패키지를 가고 말지. 몸은 침대에 누워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여행에 대한 여러 가정들이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던 탓에 지끈 두통이 올라왔다. 당충전이 필요한 시간이다. 배달 어플로 디저트 메뉴를 보고 있는데 유난히 에그타르트가 눈에 들어왔다.
맞아. 리스본 여행에서 먹은 에그타르트는 정말 끝내줬는데.
내 인생 최고의 에그타르트였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 매번 이 이름을 완벽하게 기억해내지 못해서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 에그타르트’를 검색해 보지만. 그때의 충격이 각인되어 한국에서 파는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를 먹어도 충족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기억만 남은 채 점점 희미해져 가는 감각에 입맛만 다시고 있다. 그 맛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다음 여행지가 정해진 것 같다. 정말 오로지 에그타르트만을 위한 여행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에그타르트 투어를 해볼까도 싶고,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에서 캐리어를 끄느라 꽤 고생이었지만 그래도 낭만은 있어 도보 여행도 괜찮을 듯하다.
혼자여도 좋고, 나와 비슷한 심장박동수를 맞춰줄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