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내게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요가와 그림 그리기 정도이다. 실력이 뛰어나진 않는데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취미는 잘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잘하려고 하면 금세 흥미를 잃는다. 중학교 일 학년 때 미술을 할 것이냐, 문학을 할 것이냐 꽤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했었다. 결국 종이와 펜만 있으면 가능한 돈 안 드는 (그래서 돈도 잘 못 버는) 글쓰기를 선택했지만 아직도 그리는 걸 좋아한다. 만약 그때 미술을 택했더라면 틈만 나면 글을 끄적이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인이 된 후 혼자 컬러링북을 사서 색칠하거나 딱 한 번 드로잉 수업을 들은 것 말고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볼 일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길에서 그림을 그리는 완전히 취향저격인 수업을 발견하고는 홀린 듯이 신청버튼을 눌렀다. 그림도 글쓰기처럼 가만히 앉아서 인내의 시간을 견디는 줄만 알았는데 걸어 다니면서 그리는 그림이라니! 그것도 서울을! 아주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대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수업이 시작되는 토요일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길에서 그리는 그림의 가장 좋은 점은 사진과 달리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거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 사진첩에 1만 장이 넘는 사진이 쌓여가는 동안 눈을 감고 떠올릴 수 있는 풍경이 단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수많은 기록 말고 시간을 들인 기록 1장을 갖게 되면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완벽한 1장보다 어설픈 10장이 낫다는 선생님의 말에 위안이 되었다. 위대한 걸작을 남기려고 하면 평생 단 하나의 작품도 남길 수 없다. 수업을 마칠 때까지 최대한 힘을 빼고 설렁설렁, 그러나 꾸준히 그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첫 번째 수업에서 간단한 이론을 배우고 미술 도구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두 번째 수업부터 실전에 나섰다. 장소는 신촌이었다. 소설 수업을 들으러 자주 왔지만 이 동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선생님이 나눠준 그림지도를 손에 들고 일단 강의실을 나섰다. 음식점과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여느 도시의 풍경과 다를 것 없는 대로변과는 다르게 횡단보도 하나만 건넜는데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나왔던 신촌의 하숙집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다. 집이라기보다는 방에 가까운 집들이 다세대 주택의 복도를 촘촘히 메꿨고. 옆에서는 손두부와 콩국물을 싣고 파는 트럭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지나갔다. 토끼굴에 들어가게 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정신을 놓고 구경하다 아차 싶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시간 내에 그림을 그려야 했다.
사람 눈이 다 비슷비슷한 모양인지 그리고 싶은 독특하고 아름다운 풍경 앞에는 이미 같은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이 앉아있었다. 나만의 풍경을 찾으러 골목길을 조금 더 헤맨 끝에 길가에 버려진 의자에 철퍼덕 앉았다. 사실 의자가 있어서 풍경을 선택했다. 오르막길이 많아 다소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 배운 길에서 그림을 그릴 때의 철칙 하나. 더러워져도 상관없는 옷 입기. 까만색 카고바지를 입고 온 나의 선구안에 박수를. 철칙 둘. 눈이 피로하거나 얼굴이 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모자 쓰기. 늦여름의 햇빛은 강렬했다. 자외선은 가려주되 시야가 완전히 차단되진 않을 정도로 모자챙을 조절했다. 까만 바지와 모자만 있으면 무엇이든 그릴 수 있어.
글과 그림의 공통점이 있다면 한 문장을 쓰고 선 하나를 그리고 나면 일단 계속된다는 것이다. 첫 문장은 다음 문장을 낳고 선들은 도형을 낳는다. 몇 줄의 문장은 하나의 문단을 만들고 몇 개의 덩어리는 하나의 형체를 만든다. 그러다 보면 에이포용지 한 페이지가, 스케치북 한 장이 어느새 채워져 있다. 백지라는 똑같은 환경에서 어떻게 손을 놀리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것들이 생겨난다. 글은 일종의 그림이고 그림은 일종의 글이다. 종이에서 태어난 한 형제나 다름없다. 그래서 내가 글과 그림을 둘 다 좋아하나 보다.
둘 다 해보니 약간의 차이점이 느껴졌다. 글은 쓰려는 대상에 사랑이든 미움이든 감정이 있어야 하고 그림은 그리다 보면 감정이 스멀스멀 생긴다는 점이었다. 앉아서 그리려고 택한 풍경을 막상 그려보니 고무대야에 심어진 꽃과 주택 벽돌의 무늬까지 자세히 봐야 했다. 몇 안 되는 색연필의 색상 중에서 가장 비슷한 색을 고르려다 보니 신중해졌고 신중해지니 소중해졌다. 사진으로 찍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계단 밑에 고여있는 물 웅덩이나 녹슨 벽까지 꼼꼼히 보게 되었다. 무구하게 잠든 연인의 눈코입을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것처럼 관찰하니 잠들었던 풍경은 내 시선을 받으며 하나둘씩 깨어났다.
거리의 화가에 빙의되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팔꿈치에 차가운 촉감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한 아주머니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요구르트를 들고 서계신 것 아닌가.
"홍대 학생이여?"
뭔가 단단히 큰 오해를 하고 계신 듯했다. 아무래도 근처에 홍익대학교가 있어서 그런가 본데 홍대생이 이렇게 그림을 못 그릴리가 없잖아요. 너무 당황스럽고 뻘쭘해서 반사적으로 팔꿈치로 그림을 가렸다.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해명을 했는데 정작 아주머니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셨다. 참 편견이 없는 분이시구나. 이런 그림을 보고 홍대생이라고 착각을 해주시다니 말이다. 아주머니는 그림 그리는 모습이 기특해서 준 거라며 마시며 하라고 하셨다. 나는 염치도 없이 냉큼 요구르트를 받아 마셨다. 삼십 분을 넘게 땡볕에 앉아있었더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마신 것처럼 달콤하고 시원했다. 그리곤 아주머니는 이곳이 예쁘긴 하다며 동네 칭찬을 늘어놓으셨다.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덩달아 흐뭇해졌다.
선생님이 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말 거는 사람들이 많아 친구가 되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고 했는데 이런 느낌인가 보다. 아주머니는 소중한 마음을 쥐어주시곤 유유히 떠나셨다. 길에서 무턱대고 말을 거는 게 달갑지 않은 세상에서 아주머니의 따스한 행동은 뾰족하게 깎인 새연필같은 경계심마저 닳고 닳은 몽당연필처럼 뭉뚝하게 만들어 주었다.
완성된 그림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하지만 첫 번째 수업에서 선생님은 나의 그림은 나의 것이니 마음대로 그려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완성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창고 앞에 내팽개쳐진 쓰레받기를 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색칠하는 순간만큼은 쓸모를 다한 쓰레받기에 영혼을 불어넣는 창조주가 된 기분이었다. 1시간이 10분처럼 쏜살같이 지나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몰입의 참맛인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나와 그 앞의 풍경이 있을 따름이었다. 흔히 '발로 했다'라는 말은 손이 아니라 발로 한 것처럼 형편없다는 뜻이지만, 당당하게 '발그림'이라 칭하겠다. 직접 두 발로 걸으며 그렸으니 되었다. 오늘 단 한 장의 사진도 찍지 않았다. 그러나 신촌의 풍경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