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새 다리가 생겼다. 무슨 말이냐고? 비로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서른 살이 되도록 자전거를 못 탄다는 건 은은하게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여덟 살 때 처음 자전거를 탔다. 그땐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로 시작해서 하나씩 뗀 후 종국에는 두 바퀴로 타는 게 동네아이들의 '국룰'이었다. 나도 처음엔 잘 탔다. 조그만 보조바퀴는 탄탄한 지지대 역할을 해줬다. 쌩쌩 달려도 안정감이 있었다. 그런데 아홉 살이 되니까 보조바퀴를 달고 있는 애는 반에서 나밖에 없었다. 나와 같이 마지막까지 보조바퀴를 달고 있던 친구마저 하나를 뗐을 때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서 타보았다. 중심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 내리막길에서 심장이 터질뻔한 후 자전거 타기를 그만두었다. 두 자릿수 나이가 되서까지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탈 순 없어서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자전거 타기는 30년 묵은 빨래처럼 찝찝하고 해치워야 하는 막막한 일이 되었다.
10년이 지나 19살 때 다시 한번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아빠는 운동 신경이라고는 제로에 수렴하는 딸이 답답했는지 수능이 끝나 집에 처박혀 있는 나를 데리고 엑스포 광장으로 갔다. (조물주는 이상한 점은 빼다박게 해놓고선 수영 선수 출신인 아빠의 운동신경은 기가 막히게 빼놓았단 말이지) 아빠의 회유와 짜증과 인고 끝에 드디어 아빠가 뒤에서 잡아주지 않아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날 하루뿐 다시 타지 않았기에 내 몸은 바퀴를 굴리던 감각을 홀랑 까먹고 말았다. 그동안에는 워낙 걷는 걸 좋아하니까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날씨가 선선해지니 숨어 있던 욕구가 스멀스멀 비집고 나왔다. 나도 자전거를 타며 가을바람을 느껴보고 싶었다.
다시 10여 년이 흐른 뒤 자전거 타기에 도전했다.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먼저 비교적 한산하고 바닥이 평평한 공원을 골라야 했다. 우리는 서대문독립공원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서울 자전거 '따릉이'를 빌렸다. (대전 자전거 이름은 '타슈'다) 지나가다 봤을 땐 사람이 별로 없어 보였는데 하필 그날 등산용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무서운 초등학생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자기 몸집보다 큰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는 아이들 사이에서 서른이 넘은 어른이 자전거를 배우려니 솔직히 창피했다. 하지만 물러설 순 없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안장 위에 올라탔다. 갸우뚱. 그새 몸뚱이는 더 둔해져 있었다. 친구에게 제발 손을 놓지 말라며 난리법석을 떨며 페달을 밟았다. 친구가 조금만 느슨하게 힘을 주면 다시 기울었다. 앞으로 똑바로 가고 싶은데 자동차의 와이퍼처럼 자꾸만 양극단을 오갔다. 분하고 화가 났다. 해가 지기 전에 왔는데 하늘이 깜깜해져 있었다. 오늘 배우지 못하면 40살에도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대론 안 된다. 친구가 화장실에 간 사이 혼자 페달을 굴렸다. 첫 번째 시도, 실패. 두 번째 시도도 실패. 그렇게 몇 번을 꼼지락거리다 어라, 갑자기 되었다. 어느새 내가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친구가 오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몇 바퀴를 돌았다. 친구가 나중에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를 멀리서 찍은 동영상을 보내주었다. 주저하다가 올라서고, 멈칫하다가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는 체하지 않고 지켜봐 준 친구 덕에 혼자 힘으로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친구는 혼자 타보라고 권유했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대로 예전처럼 자전거 타는 법을 다시 잊어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내가 가장 겁이 나는 건 넘어지는 게 아니라 부딪히는 거였다.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어도 명확히 지키는 사람도 거의 없고 도시의 도로엔 각종 장애물들도 도사리고 있다. 혼자 넘어지면 그냥 깨지고 마는 건데 행인을 치거나 쓰레기통을 구겨놓을까 봐 두려웠다. 그런 모종의 이유 때문에 하루 이틀 타보는 일을 미뤘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자전거 안 타고 잘 살았는데 이대로 살면 어떠냐는 합리화까지 하게 되었다. 기껏 묵은 빨래를 했는데 안 널고 축축한 채로 썩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번에도 친구가 나를 이끌었다. 불광천에서 타보자고 했다. 불광천까지 가는 길엔 거의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걸어선 10분이면 도착하는 불광천을 타다가 걷다가 하다 한참 걸려서 왔다. 날씨 좋은 일요일에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많았다. 저 무리 속에 속할 수 있을까? 9살로 되돌아온 것처럼 간이 쪼그라들었다. 친구가 앞장서서 가고 그 뒤를 따르기로 했다. 다행히 몇 분만에 자전거 타는 건 익숙해졌다. 그런데 워낙 천천히 달려서 뒤에서 민원이 들어왔다. 자전거는 '초보 운전' 팻말이 없나.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자칫 조금만 핸들을 틀으면 마주 보고 달려오는 사람과 부딪힐 것 같았다. 부딪히지 않으려고 애를 쓰니 오히려 충돌할 뻔한 상황이 늘었다. 어떤 아저씨는 화를 냈다. 뒤에선 따르릉 소리를 내며 나를 앞질러 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그냥 놨다. 갑자기 자전거를 타게 된 순간처럼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 부딪히지 않는 방법은 멈춤뿐이다. 갈등을 피하려고 하면 도전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된다. 얼마나 손잡이를 세게 쥐고 있었는지 손이 얼얼했다. 어깨와 배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딱딱했다. 모르겠다. 자전거 타고 넘어진다고 죽기야 하겠어. 그렇게 마음을 먹고 앞만 보고 달리니 오히려 아찔한 상황이 사라졌다. 내가 친구보다 빨라졌다.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생겼다. 친구가 웃으며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처음인 사람은 무식하다. 아니 용감하다. '한강 1500m'라는 표식이 나오자 냅다 달렸다. "우리 한강 가자!" 나의 외침에 친구도 뒤를 따랐다. 1500m는 1000m가 되고 1000m는 500m가 되었다. 졸졸 흐르던 불광천은 금세 큰 한강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잔디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난지한강공원은 라이딩에 본격적인 사람들이 더 많았다. 철새가 한데 모여 날듯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부딪히지 않고 각자의 속도대로 달렸다. 목이 말라 잠시 자전거를 세워 놓고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마셨다. 숨 돌린 뒤 바라보는 한강은 더 이상 예전의 한강이 아니었다. 꽤 많이 한강을 갔지만 그날의 한강은 달랐다. 자전거 타기는 걷기와는 달리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앞만 보고 두 다리만 움직이면 된다. 한결 개운하다. 잡념까지 한강물에 풀어놓고 왔다. 한강에 대한 로망은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종종 혼자 한강에 갈 것 같다. 나에겐 새 다리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