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나는 장소에도 궁합이 있다고 믿는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재간은 없어도 육감으로 느낄 수 있다.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고 가뿐해지는 곳이 있는 반면, 불편한 옷을 입은 것처럼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고 위축되는 곳이 있다. 서울에서 전자에 해당되는 곳은 을지로, 서촌 등 종로 쪽이고 후자에 해당되는 곳은 압구정, 이태원 등 강남 쪽이다. 강남, 강북을 따지자는 건 아니고 그냥 내 몸이 거부한다. 그렇다면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냐고? 아니다. 무척 좋아한다. 서울이 좋은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종로에도 사람은 많다. 이십 대 땐 서울에 사는 친구들과 강남에서 종종 놀았다. 물론 즐거웠다. 그때는 화려한 밤거리와 왁자지껄한 술자리도 나에게 맞는 옷이었다. 운동화도 편하지만 가끔은 날렵한 부츠도 신고 싶었다. 나이 들수록 편한 옷만 찾게 되는 건지 취향이 한정적으로 변하는 건지 요즘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진다.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친동생과 청담동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나와 다르게 강남을 휘젓고 다니는 동생은 상경한 언니를 위해 고급 레스토랑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레스토랑으로 향하면서 거인의 신발처럼 크고 높은 빌딩들을 올려다봤다. 나는 거인의 발짓을 피하려는 소인국 주민처럼 발걸음을 빨리 했다. 레스토랑 안은 크리스털 조명이 달려 있었고 배우 지망생이라고 해도 수긍이 가능한 수려한 외모의 직원들이 자리를 안내했다. 식탁에는 핸드크림이 놓여 있었는데 향이 너무 강해서 먹기도 전에 입맛이 달아났다. 이만 원짜리 김치볶음밥과 만 팔천 원 하는 새우 로제파스타는 소금을 들이부은 것처럼 짰다. 동생에겐 미안하지만 반절이나 남겼다. 해가 진 압구정은 조악한 미러볼 같았다. 벤츠에서 내린 울퉁불퉁한 남자들이 차례로 걸쭉한 가래침을 뱉었다. 사람들은 곧 있으면 민낯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불빛 아래서 흔들렸다. 어수선함을 뒤집어쓰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젖은 옷을 입은 것처럼 찝찝했다. 그 뒤로는 약속 장소를 두고 동생과 실랑이를 벌인다. 긴급 대피소로 홍대를 정했다. 홍대 역시 나쁘진 않지만 그저 그렇다. 피가 섞인 가족도 타협하기 어려운 게 '동네취향'이다.
세 번이나 보았던 '결혼 이야기'는 한 때는 사랑했지만 이제는 이혼을 앞둔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긴말 필요 없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알 수 있다. 남자의 얼굴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여자의 얼굴은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채 대치되어 있다. 각기 다른 장소는 2시간이 넘는 서사를 단 한 장으로 압축한다. 차갑고 삭막한 뉴욕에서 사는 남자와 밝고 기운 넘치는 LA에서 사는 여자. 갈등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다. 하지만 둘 다 뉴욕에 살거나 둘 다 LA에 살았더라면 사랑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로 달라서 싸우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난 도시를 원하지만 내가 사랑한, 사랑했던 사람들은 도시보다는 고즈넉한 장소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어떤 동네를 좋아하는지는 곧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결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는... 바로 '정동'이다!
정동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다. 서울시청,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서울도서관, 정동극장, 서울시립미술관, 정동제일교회, 덕수궁까지 한데 모여있다. 어떤 외국인이 서울에 머무를 시간이 딱 하루밖에 없다면 주저하지 않고 정동을 데려갈 것이다. 가장 예스러우면서도 가장 현시대적인 곳. 정동이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서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도 정동에 있어서 살짝 애정이 식긴 했지만 또 정동길을 산책하면 별 수 없이 애정이 샘솟는다. 세 번째 미술 수업이 정동에서 진행된다는 걸 알고 수업을 신청한 것도 있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고민했던 신촌과 달리 정동에서는 쉽게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싶은 장소가 그곳에 있었다.
오래전 샘과 나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를 보러 서울시립미술관에 갔었다. 오래전이라고 하니 사뭇 낯설다. 그러나 벌써 6년 전이다.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도 하고 전생처럼 까마득하기도 하다. 우리는 미술관에 가기 전 브런치 가게를 찾았다. 싱그러운 4월의 날씨에 야외 테라스에서 먹는 샌드위치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었다. 다 먹은 후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와플을 먹었는데 앙증맞은 참새들이 부리를 콕콕대며 와플 부스러기를 탐내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귀여웠던지. 마침 행차 재현식이 시작되고 있어서 던킨 도너츠에서 산 딸기라테를 쪽쪽 빨며 구경했었다. 어떤 게 특별히 좋았던 하루가 아니라 하루 전체가 특별했다. 샘이와 함께하는 하루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폴 발레리는 '정말 절대적으로 나쁜 순간들은 포착할 게 아무것도 없는 순간들, 우리가 정신의 하늘로 가져갈 만한 어떤 것도 포착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그런 순간들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좋은 순간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지만 샘이랑 있으면 그저 좋다.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우리는 만나서 다른 순간에서 잡은 것들을 늘어놓을 뿐이다.
나는 샘이에게 가끔 지나치게 똑똑한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1년 전 오늘'의 사진을 보낸다. 샘이도 클라우드에 냉동되어 있는 5~6년 전 사진을 보내오기도 한다. 사진 속에 담긴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순진해 보인다. 그때도 이런저런 걱정과 상념들에 둘러싸여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 텐데 희한한 일이다. 이미 멀리 떠나온 시간이 만들어 준 착각일까. 우리의 얼굴은 백지처럼 말갛다. 우리는 이때로 돌아가고 싶다며 우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풋내가 난다며 서로의 젊음을 (지금도 젊지만) 치켜세우기도 한다. 상기해 보니 서울에 온 뒤 부쩍 사진을 보내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각자 있는 장소는 달라도 정신의 장소를 공유하고 있지만 가끔은 같은 장소에 함께 있고 싶다.
그때 우리가 먹었던 브런치 가게 앞에 서서 그림을 그렸다. '정동'이라는 명칭을 처음 인식했던 건 그때 이후였다. 거리가 너무 예뻐 찾아보다가 '정동길'이란 걸 알았다. 장소는 기억을 머금는다. 추억이 깃든 장소는 기분 좋게 촉촉해지게 만든다. 그날 호크니 전시에서 호크니는 인물을 그릴 때 그 사람의 분위기와 성격, 관계까지 담았다는 걸 배웠다. 그림을 그리며 그때의 추억까지 담았다. 그날의 바람과 햇살이 전해져 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