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노무현과 시대의 문턱

by 김작가a

제2화 질문의 씨앗, 청년 노무현과 시대의 문턱

흙길을 벗어나며

연제의 흙길을 지나,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었다. 나는 문학을 향했고, 그는 법을 향했다. 그러나 그 길은 단순한 진로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와 싸우는 방식의 차이였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의 차이였다. 1960~70년대의 한국은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였다. 침묵이 미덕이었고, 복종이 생존의 조건이었다. 그런 시대에 그는 질문하는 청년이 되었다.

노무현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가지 못했다. 가난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독학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1975년, 마침내 합격했다. 그가 법복을 입었을 때, 나는 신문사 수습기자로 첫 기사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권변호사, 질문하는 법의 시작

그가 변호사로서 처음 맡은 사건은 단순한 민사나 형사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편에 섰고,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특히 부림사건—1981년, 부산에서 발생한 공안 사건에서 그는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다. 당시 군사정권은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며 수많은 청년들을 간첩으로 몰았다.

나는 그 사건을 취재하며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기사에 적었다. “노무현 변호사, 피고인 인권 침해 주장.”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향한 저항이 담겨 있었다. 그는 법정에서 외쳤고, 나는 지면에서 기록했다. 우리는 다시 교차했다.

그는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 말은 이제 논쟁이 아니라 설득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논리를 펼쳤고, 나는 그 논리를 따라가며 사회의 균열을 보았다. 그가 변호한 사람들은 대부분 패소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에게 법은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방패였다.

청문회, 질문이 무기가 되다

1988년, 제13대 국회가 출범했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다수당이 된 국회였다. 그해 여름, 국회는 ‘5공 청문회’를 열었다. 전두환 정권의 비리를 밝히기 위한 자리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노무현은 다시 등장했다.

그는 초선 의원이었다. 그러나 그의 질의는 초선답지 않았다. “전두환 씨, 당신은 헌법을 유린했습니다. 국민을 속였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고,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TV 앞에서 그를 바라보며, 연제의 흙길을 떠올렸다. 그 소년이 이제 권력 앞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청문회 스타’가 되었다. 언론은 그를 주목했고,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들뜨지 않았다. “질문은 시작일 뿐입니다. 답은 시민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노트에 적었다. “질문은 시작이다.”

지역주의와의 싸움

1990년대, 그는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그러나 결과는 낙선이었다. 부산은 보수의 심장이었고, 그는 진보의 깃발을 들었다. 지역주의는 벽이었다. 그는 그 벽 앞에서 외쳤다. “지역을 넘어서야 민주주의가 옵니다.”

나는 그의 유세를 따라다녔다. 시장에서, 골목에서, 공원에서 그는 시민들과 눈을 맞췄다. “왜 부산은 늘 한쪽만 찍습니까?” 그는 물었고, 시민들은 침묵했다. 그 침묵은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1998년, 그는 다시 출마했다. 또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웃었다. “민주주의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나는 그 말을 기사 제목으로 썼다. “노무현,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 그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패배 속에서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시대의 문턱에서

2002년, 그는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당선되었다. 연제의 흙길에서 시작된 걸음이 청와대까지 닿았다. 나는 그날 밤, 신문사에서 마지막 교정을 보며 울었다. “노무현, 연제 출신 대통령.” 그 문장은 내게 단순한 뉴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문턱을 넘은 기록이었다.

그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도 시민입니다.” 그는 권력을 권력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시민에게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그 길은 험난했다. 언론은 그를 공격했고, 정치권은 그를 고립시켰다. 그는 외로웠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다시 연제를 떠올리며

나는 그를 기록하며, 나 자신을 기록했다. 그의 질문은 내 질문이 되었고, 그의 고뇌는 내 고뇌가 되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았고, 같은 흙길을 걸었다.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나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시작은 같았다—연제의 흙길.

그는 퇴임 후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마늘을 심고, 시민들과 대화했다. 나는 그의 삶을 글로 심었다. 그리고 2009년, 그는 떠났다. 부엉이 바위에서. 나는 그 바위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그의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제2화를 마치며

이 글은 그의 정치적 행보를 기록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질문이다. 그는 늘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그 질문을 따라 글을 쓴다. 그리고 지금, 다시 연제의 흙길을 떠올리며 적는다.

“당신은 질문을 남겼고, 나는 그 질문을 따라 걷는다. 같은 시대, 같은 고통, 같은 기록. 그리고 지금, 같은 희망.”

화, 목, 토 연재
이전 01화연제의 흙길, 기억의 첫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