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4월 6일, 경상북도 선산군 이문리. 봄은 조용히 찾아왔다. 매화가 피고, 논두렁에 물이 돌기 시작하던 그날, 김형철은 마당에 앉아 묵묵히 붓을 들고 있었다. 그의 붓끝은 『대학』의 한 구절을 따라가고 있었고, 그 옆에서 권유금은 막 태어난 셋째 아들을 품에 안고 있었다. “이 아이는 말이 늦을 것 같소.” 그녀가 말했다.
김형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랬다.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믿었다. 셋째 아들, 김재규. 그 아이는 울지도 않았고, 눈을 크게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세상을 관찰하는 듯한 눈이었다. 그날 이후, 김재규는 조용한 아이로 자랐다. 형제들과 달리 말수가 적었고, 어른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고, 그 생각은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아버지 김형철은 그런 아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셋째 아들에게서 무언가 다른 기운을 느꼈다.
김형철은 조선 말기 양반 가문의 후손이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유교적 가풍을 지켜왔고, 그는 그 전통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려 했다. 그는 서당을 운영하며 마을 아이들에게 한문과 사서오경을 가르쳤고, 자식들에게도 매일 아침 붓글씨를 쓰게 했다. 김재규는 아버지의 서당에서 가장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는 질문을 하지 않았고, 대답도 짧았다. 그러나 그의 붓글씨는 단정했고, 글씨 속에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김형철은 그런 아들을 보며 “이 아이는 말보다 붓을 믿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권유금은 조용한 강인함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녀는 자식들에게 늘 “말은 아껴야 한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다”라고 가르쳤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삶의 철학이었다. 김재규는 어머니의 조용한 강인함 속에서 결단의 의미를 배웠고, 그 결단은 훗날 유신체제의 심장을 겨누는 총성으로 이어졌다.
김재규는 7남매 중 셋째였다. 큰형 김재성은 학문에 정진하여 지역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고, 둘째 형 김재호는 농업에 관심을 가져 지역 농업 발전에 힘썼다. 여동생들은 대부분 조용한 삶을 살았지만, 그들 역시 가정의 윤리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막내 여동생 김순애는 김재규와 정서적으로 깊은 유대를 맺었고, 김재규가 군에 입대할 때까지 편지를 통해 그의 내면을 지지했다. 그녀는 형의 침묵을 이해했고, 그 침묵 속에서 형이 품고 있는 결단을 느꼈다.
김재규는 안동농림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근대적 교육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농업과 생물학, 기초 과학을 배우며 실용적 사고를 키웠지만, 동시에 가정에서 배운 유교적 윤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말수가 적었고, 늘 조용한 태도를 유지했다. 대구농업전문학교에 진학한 김재규는 보다 넓은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며 식민 권력의 언어를 익혔지만, 그 언어 속에서 민족적 자각을 키웠다. 그는 일본 교과서의 왜곡된 역사 서술에 분노했고, 친구들과 함께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토론했다. 그러나 그는 늘 침묵을 선택했고, 그 침묵은 내면의 저항이었다.
김재규는 군에 입대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는 군대에서도 말수가 적었고, 상관들은 그를 “조용하지만 믿음직한 병사”라고 평가했다. 그는 전략과 전술에 능했고, 부하들에게는 엄격하면서도 공정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군대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 속에서 결단을 내리는 법이었다. 그는 명령을 따르되, 그 명령이 윤리적일 때만 따랐다. 그는 상관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 침묵으로 저항했고, 그 침묵은 때로는 위험을 불러왔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1970년대,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유신체제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체제의 어둠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적 성향에 대해 우려했고, 그 우려는 점차 결단으로 바뀌었다. 그는 침묵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고, 그 침묵 속에서 계획을 세웠다. 그는 붓글씨를 쓰며 마음을 다스렸고, 그 글씨는 그의 결단을 준비하는 의식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청와대 근처에서 마지막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오래된 붓과 한 장의 한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위에 단 한 글자를 썼다. “義” 그 글자는 그의 아버지가 늘 강조하던 말이었다. 침묵 속의 정의. 말 없는 결단. 그리고 그날 밤, 총성이 울렸다.
김재규의 결단은 단지 정치적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정에서 배운 윤리, 침묵, 결기, 그리고 민족적 자각의 총합이었다. 아버지 김형철의 말 없는 권위, 어머니 권유금의 조용한 강인함, 형제들의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은 모두 김재규의 내면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는 유신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침묵을 지켰고, 그 침묵은 단순한 순응이 아니라 결단을 위한 준비였다. 그는 총을 들었지만,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윤리적 선언이었다. 그의 총성은 가정의 침묵에서 비롯되었고, 그의 붓글씨는 가족의 윤리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