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의 혼에서 재야의 윤리로

by 김작가a

침묵의 뿌리, 결단의 총성

― 의병의 혼에서 재야의 윤리로, 김재규와 장준하의 만남

침묵의 윤리, 결단의 서사

1924년 봄, 경상북도 선산군 이문리. 매화가 피고 논두렁에 물이 돌던 그날, 김형철은 『대학』의 구절을 따라 붓을 들고 있었고, 권유금은 셋째 아들 김재규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아이는 울지도 않고, 천장을 바라보며 세상을 관찰했다. 그 침묵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윤리적 태도였다. 김재규의 삶은 말보다 침묵을, 침묵보다 결단을 중시하는 서사였다. 그의 침묵은 유교적 가풍 속에서 자라났고, 붓글씨와 한문, 사서오경 속에서 윤리의 씨앗을 품었다. 그러나 그 씨앗은 단지 가정의 울타리 안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시대의 억압과 민족의 고통 속에서 자라났고, 결국 유신체제의 심장을 겨누는 총성으로 피어났다. 이 글은 김재규의 침묵을 의병의 정신과 연결하고, 그 침묵이 어떻게 장준하라는 재야의 대통령과 만나 윤리적 결단으로 이어졌는지를 장엄한 서사로 풀어낸다.

의병의 혼: 침묵 속의 저항

조선 말기, 나라가 기울어가던 시절. 의병들은 말보다 행동으로, 행동보다 결기로 나라를 지켰다. 그들은 붓보다 칼을 들었고, 침묵 속에서 결단을 내렸다. 김재규의 가문은 그런 의병의 정신을 품고 있었다. 그의 조부는 을미사변 이후 의병에 가담했고, 아버지 김형철은 그 정신을 유교적 윤리로 승화시켰다. 김재규는 어릴 적부터 의병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말없이 그 이야기를 마음에 새겼고, 붓글씨로 “忠”과 “義”를 반복해 썼다. 그의 침묵은 의병의 침묵과 닮아 있었다. 말하지 않되, 결단하는 태도. 순응하지 않되, 저항하는 자세. 그것은 단지 가정의 교육이 아니라, 시대의 유산이었다.

근대의 문턱: 침묵과 자각

안동농림고등학교와 대구농업전문학교에서 김재규는 근대적 교육을 접했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며 식민 권력의 언어를 익혔지만, 그 언어 속에서 민족적 자각을 키웠다. 일본 교과서의 왜곡된 역사에 분노했고, 친구들과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토론했다. 그러나 그는 늘 침묵을 선택했다. 그 침묵은 내면의 저항이었다. 그는 붓글씨를 쓰며 마음을 다스렸고, “義”라는 글자를 반복했다. 그것은 단지 글씨가 아니라, 결단의 예행연습이었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글씨는 시대를 향한 윤리적 선언이었다.

군인의 길: 침묵 속의 리더십

군에 입대한 김재규는 조용한 병사였다. 그는 전략과 전술에 능했고, 부하들에게는 엄격하면서도 공정한 지휘관이었다. 그는 명령을 따르되, 윤리적일 때만 따랐다. 부당한 지시에는 침묵으로 저항했고, 그 침묵은 때로는 위험을 불러왔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리더십의 방식이었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행동보다 윤리로 부하들을 이끌었다. 그의 침묵은 단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판단의 도구였다.

중앙정보부장: 권력의 중심에서 침묵하다

1970년대, 김재규는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유신체제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체제의 어둠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적 성향에 대해 우려했고, 그 우려는 점차 결단으로 바뀌었다. 그는 침묵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고, 그 침묵 속에서 계획을 세웠다. 그는 붓글씨를 쓰며 마음을 다스렸고, 그 글씨는 그의 결단을 준비하는 의식이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늘 “義”라는 글자가 놓여 있었다.

장준하와의 만남: 침묵과 윤리의 교차점

1974년, 김재규는 장준하를 만났다. 장준하는 독립군 출신으로, 해방 이후에는 재야의 대통령이라 불리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행동보다 윤리로 시대를 이끌었다. 그의 삶은 의병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이었다. 김재규는 장준하의 침묵을 이해했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고, 그 침묵 속에서 윤리적 결단을 공유했다. 장준하는 김재규에게 “침묵은 결단을 위한 준비입니다”라고 말했다. 김재규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고, 그날 이후 그의 침묵은 더욱 깊어졌다. 그들의 만남은 단지 개인적 교류가 아니라, 시대의 윤리적 교차점이었다. 의병의 정신과 유신체제의 억압, 침묵과 결단, 붓과 총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결단의 밤: 침묵의 총성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청와대 근처에서 마지막 보고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오래된 붓과 한 장의 한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 위에 단 한 글자를 썼다. “義” 그 글자는 그의 아버지가 늘 강조하던 말이었다. 침묵 속의 정의. 말 없는 결단. 그리고 그날 밤, 총성이 울렸다. 그 총성은 단지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윤리적 선언이었다. 그것은 침묵의 끝이자, 결단의 시작이었다. 김재규는 총을 들었지만,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윤리적 저항이었다. 그의 침묵은 의병의 침묵과 닮아 있었고, 그의 결단은 장준하의 윤리와 닮아 있었다.

침묵의 유산: 붓과 총 사이

김재규의 결단은 단지 정치적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정에서 배운 윤리, 침묵, 결기, 그리고 민족적 자각의 총합이었다. 아버지 김형철의 말 없는 권위, 어머니 권유금의 조용한 강인함, 형제들의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은 모두 김재규의 내면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는 유신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침묵을 지켰고, 그 침묵은 단순한 순응이 아니라 결단을 위한 준비였다. 그는 총을 들었지만,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윤리적 선언이었다. 그의 총성은 가정의 침묵에서 비롯되었고, 그의 붓글씨는 가족의 윤리에서 태어났다.

장준하의 유산과 김재규의 결단

장준하는 1975년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그의 죽음은 재야의 윤리적 상징이었고, 김재규는 그 죽음을 마음에 새겼다. 그는 장준하의 침묵을 기억했고, 그 침묵 속에서 결단을 준비했다. 그의 총성은 장준하의 유산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들의 만남은 짧았지만, 그 침묵은 길었다. 그 침묵은 시대를 관통했고, 윤리를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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