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봄, 서울의 대학가는 들끓고 있었다. 민재는 철학과 2학년, 학생회 기획부장이었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다!” 그날은 학교 앞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였다. 경찰의 방패가 밀려들고, 동료들이 끌려가는 모습이 그의 눈에 각인되었다. 그날 이후, 민재는 달라졌다. 밤마다 술을 마셨고, 혼잣말이 늘었다. “우리가 이긴 게 맞는 걸까?” 그는 자주 중얼거렸다. 술은 처음엔 위로였지만, 점차 그를 잠식했다. 알코올은 그의 불안과 죄책감을 증폭시켰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게 했다.
민재는 어느 날 형에게 말했다. “형, 누가 날 감시하고 있어. 내 생각을 훔쳐가.”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말은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내려진 진단은 조현형 정신증(Schizophreniform Disorder) — /ˌskɪtsəˈfriːnɪfɔːrm/ 스키조프리니폼 디스오더. 이는 조현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지만, 지속 기간이 1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일 때 붙는 이름이다.
민재의 증상은 다음과 같았다:
망상: 교수와 경찰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확신.
환청: “넌 실패자야”라는 목소리가 들린다고 주장.
와해된 언어: 대화 중 주제가 급변하거나 논리적 연결이 끊김.
음성 증상: 감정 표현의 감소, 무의욕증, 사회적 고립.
의사는 말했다. “민재 씨는 스트레스성 발병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알코올 사용은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입니다.”
민재는 이미 알코올 의존증(Alcohol Use Disorder)의 초기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알코올은 뇌의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해 일시적인 쾌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인지 기능 저하와 정신증 유발 가능성을 높인다. 그는 술 없이는 잠을 자지 못했고, 금단 증상으로 손이 떨리고 불안해했다. 병원에서는 해독 치료와 함께 정신치료를 병행했다. “술이 없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아…” 민재는 울며 말했다.
민재는 자해 위험이 있었고, 가족의 설득에도 치료를 거부했다. 결국 응급입원 절차를 밟게 되었다. 보호자인 형은 경찰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고,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통해 72시간 응급입원이 결정되었다. 어머니는 울며 말했다. “우리가 민재를 버리는 것 같아…” 하지만 형은 알았다. 이것이 민재를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입원 후 민재는 항정신병 약물인 리스페리돈(Risperidone)을 처방받았다. 처음엔 졸림과 식욕 저하, 불안이 심했지만, 2주가 지나자 점차 망상이 줄어들고 환청도 사라졌다. 의사는 말했다. “약물 반응이 양호합니다. 조현병으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민재는 여전히 약을 거부하려 했다. “내 머릿속을 조작하려는 거야. 이건 독이야.” 가족은 매일 병원을 찾아가 설득했고, 의료진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했다.
민재는 총 1년간 입원했다. 이는 조현형 정신증의 일반적인 치료 기간을 넘는 수준이었지만, 그의 상태는 복합적이었다. 알코올중독과 외상 후 스트레스, 그리고 사회적 고립이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입원 중 그는 다음과 같은 치료를 받았다:
약물치료: 항정신병 약물과 항불안제 병용.
심리치료: 인지행동치료, 집단치료, 미술치료.
재활훈련: 낮병원 프로그램, 직업훈련, 사회기술훈련.
가족상담: 가족의 이해와 지지를 위한 정기 상담.
민재는 점차 회복되었지만,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불안했고, 때때로 과거의 환청이 되살아났다.
민재는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철학 서적을 탐독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 당시의 기억을 글로 정리했다. “그때 나는 너무 많은 걸 짊어졌어.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나 자신을 잃었지.” 의사는 말했다. “트라우마는 정신증의 촉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민재 씨는 그 시절을 다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복은 직선이 아니었다. 민재는 가끔 술을 찾았고, 불안에 떨었다. 그럴 때마다 가족은 그를 감싸 안았다.
형은 민재를 돌보며 자신도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가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우리가 아픈 게 아니라, 함께 아픈 거였어요.” 가족은 민재를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함께 울고, 함께 걸었다.
1년 후, 민재는 대학에 복학했다. 그는 조용히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교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괜찮았다. “나는 다시 시작할 거야. 이번엔 나를 지키면서.” 그는 조현형 정신증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였고, 알코올이라는 그림자와 싸우는 법을 배웠다.
다음 회차에서는 민재가 병동에서 보낸 1년간의 시간을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병동의 규칙과 일상, 치료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같은 병을 앓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민재가 어떻게 자신을 재발견해갔는지를 따라갑니다.
병동 내의 구조와 치료 시스템
환자들 사이의 연대와 갈등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민재의 내면 변화
그리고, 병동 밖 세상을 향한 첫 걸음
민재의 이야기는 이제 병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