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공기는 차갑지만 햇살은 여전히 부드럽게 남아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감사의 마음이다. 1인 가구의 방 안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살아 있다는 사실, 오늘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작은 일상들이 이어진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창문을 열면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마다 느껴지는 공기의 결은 하루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작가는 그 순간에도 감사한다.
늦은 오전, 아점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동네 밥집으로 향한다. 따뜻한 국과 밥, 정성스러운 반찬이 차려진 한 상은 단순한 식사 그 이상이다. 점주는 특별한 말을 건네지 않아도 눈빛과 미소로 반갑게 맞아준다. 말보다 더 깊은 무언의 교감, 이심전심이 오가는 순간이다. 1인 가구에게는 이 작은 교감이 하루의 리듬을 잡아주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밥을 씹으며 느껴지는 따뜻함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우는 순간이 된다. 작가는 그 따뜻함에 감사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점주는 굳이 말을 길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눈빛과 태도에서 전해지는 배려가 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는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문장을 다듬는 시간은 고요하지만 동시에 고독하다. 재택으로 글을 쓰는 작가의 일상은 자기와의 대화로 가득하다.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고르고, 다시 지우고 쓰는 반복 속에서 작가는 자신과 대화한다.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집중이 흐트러질 때면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내가 올린 글이나 사진에 달린 ‘좋아요’를 확인한다. 화면 속 작은 알림 하나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고, 외로운 마음을 잠시 덜어준다. 좋아요 숫자가 많든 적든 중요한 건 누군가 내 일상과 글에 반응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가 된다. 작가는 그 연결에 감사한다.
그때 단톡방 알림이 요란하게 울린다. 취미모임 단톡방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활동 사진을 올리고, 또 다른 사람은 다음 모임 날짜를 제안한다. 메시지가 쏟아지며 화면은 활기를 띤다. 혼자 있는 방 안은 고요하지만, 손 안의 작은 화면은 모임 장소처럼 떠들썩하다. 단톡방의 요란함은 때로는 피곤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사람들의 열정과 관심을 확인하게 된다. 직접 참여하지 않아도, 메시지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그 공간은 여전히 사회와 연결된 흔적이다. 외로움 속에서도 취미모임 단톡방의 소란은 묘하게 안도감을 준다. 작가는 그 활기에 감사한다.
저녁이 되면 하루를 마무리할 때도 다시 동네 밥집으로 향한다. 저녁 메뉴는 따뜻한 찌개나 제육볶음 같은 든든한 반찬이 상에 오른다. 점주는 여전히 따뜻하게 맞아주며, 굳이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눈빛과 태도에서 전해지는 배려가 있다. 작가는 그 무언의 이심전심에 감사한다. 혼자 사는 삶 속에서도 이런 교감은 하루의 피로를 덜어주는 위로가 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뉴스를 챙겨본다.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가고, 사회와 세계의 소식은 화면을 통해 전해진다. 작가에게 뉴스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글을 쓰는 재료이기도 하다. 늦가을의 차가운 공기와 대비되는 세상의 뜨거운 이야기들이 오늘의 기록을 풍성하게 만든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 속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잠들기 전, 작가는 다시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 있었던 작은 친절과 순간들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기록한다. 아점으로 시작된 하루, 글쓰기와 스마트폰 속 연결, 취미모임 단톡방의 요란함, 저녁 밥집의 따뜻한 음식, 뉴스로 확인한 세상의 움직임. 모두가 감사할 만한 순간들이다. 결국 삶을 지탱하는 힘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 있다. 늦가을의 공기처럼 차갑지만, 그 속에서 발견하는 따뜻한 온기와 무언의 이심전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