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술과 윤리의 조건들—그 그림자를 응시해보는, 심연을 거니는 서사입니다.
사이의 장 제목: 신은 침묵할 줄 아는 존재인가
감정 톤: 고요한 겸허. 작가 메모: “나를 돌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신 앞에서
나는 더 조용히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추천곡: Arvo Pärt – ‘Spiegel im Spiegel’ 신의 침묵처럼 반사되고 반복되며 가라앉는 선율
Sufjan Stevens – ‘Should Have Known Better’ 상실과 회복, 빛과 그림자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는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기술이 따라가지 못하는 감정의 깊이를 보여주는 보컬과 가사
여섯 번째 장, 신 없는 진화 속에서 다시 믿음을 껴안는 시간으로 걸었습니다. 이 장은 설명과 신비 사이, 불확실성 속에서 관계로 나아가는 신앙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신의 ‘부재’가 아니라, 침묵이라는 방식의 동행을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이기도 하죠.
신 없는 진화, 신의 침묵을 껴안는 신앙
“신은 설명되지 않아도, 사랑으로 남을 수 있는 존재인가.” — 작가의 노트
1. 신은 나를 떠난 걸까, 아니면 내가 신을 잃은 걸까
나는 어릴 적 신은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존재라 믿었다. 그런데 오히려 설명이 필요했던 순간마다 신은 침묵했다. 양극의 저편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신은 없다고 말하는 진화론이 더 ‘과학적’이어 보였고, 침묵하는 신은 그 과학보다도 더 현실에서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그 부재 안에서 처음으로 신이 나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설명’이 아니라 ‘남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은 나를 지우지 않는 방식으로, 나의 고통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 『공존의 길』 중에서
2. 과학은 설명하고, 신앙은 함께 머문다
진화론은 경이로웠다. 선택되지 못한 존재는 사라지고, 극복된 결핍은 유전자에 기록된다. 그 위대한 설명 앞에서, 나는 점점 더 **“그래서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게 되었다. 과학은 “당신은 그저 우주의 일부”라고 설명했고, 신앙은 “당신은 의미의 일부”라고 속삭였다. 나는 그 둘 사이를 떠돌았다. 그리고 이제는 둘 다를 ‘내가 살아 있는 근거’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3. 침묵 속의 동행 — 설명을 넘어선 존재의 감각
『조울증은 감기다』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 속에서 나는 누군가가 내 곁에 있다는 느낌 하나로 버텼다.” 그것은 신이었다.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고, 해결을 제시하지도 않았지만, 결국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 머물렀던 존재. 신의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공간이었고, 그 공간 안에서 나는 내 감정을 부드럽게 놓아둘 수 있었다.
4. 나는 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기억한다
나는 더 이상 신을 논리로 방어하지 않는다. 그건 이성의 일이 아니다. 나는 이제 신을 ‘관계로 경험된 존재’로 기억하려 한다. 진화론은 여전히 옳다. 창조론도 여전히 나를 움직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건, 내 삶 속에서 내가 신을 잃고 다시 만나는 과정 자체다. “신은 나를 붙잡지 않아도, 내가 그 이름을 속으로 부를 수 있다면, 그 존재는 아직 내 안에 있는 것이다.” — 작가의 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