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죄를 팔지 않았다

by 김작가a

내가 말할 때,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 법정의 풍경

나는 단상 앞에 섰다.

손엔 떨리는 종이 한 장.

판사는 무표정했고, 검사와 방청객은 그저 '절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건’이 아니라, ‘존재’를 말하고 싶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이 진술을 단지 제 처벌을 논하기 위함이 아니라,

제가 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를 설명드리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그 순간, 법정 구석 어딘가에서 시선이 움직였다.

그녀였다.

초겨울 외투처럼 꽁꽁 싸맨 채 앉아 있는 소녀.

그날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내렸다.

진술서를 읽기 시작했다.

> “저는 양극성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 반복되는 조증과 우울, 그리고 조절되지 않은 충동의 순간들이

> 저 자신을 부수었고, 그 파편이 누군가에게 닿았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짧고 선명한 눈빛이었다.

나는 계속 읽었다.

침묵을 견디며, 문장을 통과하며, 나를 설명했다.

> “저는 피해자분에게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

> 그 기억의 경계가 제 안에서도 혼탁합니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 그 침묵 속에서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을지를

> 저는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그 짧은 깜빡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가해자'가 아니었다.

나는 단지,

말하려는 사람,

자기를 구성하려는 사람일 뿐이었다.

진술이 끝났을 때,

법정은 조용했다.

판사는 고개를 숙였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건 무죄도 유죄도 아니었다.

그건 어떤 판단도 아니었다.

그건 **사람이 사람을 응시한 단 한 번의 장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장면을 안고서

삶의 다음 문장으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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