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나그네방이 이사 준비를 합니다. 잠시 후에는 어느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가 제가 다음 집을 계약합니다.
가계약금을 넣어 두었는데, 계약금은 그보다 더 필요해서 어젯밤 부리나케 계좌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모았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몇 백만 원. 모종의 책임감을 손에 쥐고, 다시 말해 종잣돈을 쥐고 부동산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나그네방 시즌4는 성북구 안쪽으로 조금 더 이동합니다. 지난 한 달간 집을 보러 다니며 열심히 발품을 팔았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아침저녁으로 하는 달리기를 부동산 투어로 대신했습니다. 온 동네 부동산에 붙은 쓰리룸 전세 매물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던 8월. 우연히 찾게 된 성북동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집이 마음에 들었지만, 부모님에게 보여드리자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그 후 눈여겨보았던 부동산에 들어갔다가 오늘의 집을 발견했지요.
새로 가는 집은 연식이 있는 다세대 주택입니다. 연식은 있지만 집주인 부부가 어찌나 정성스럽게 관리하셨는지, 잘 관리한 티가 나는 건물입니다. 베란다에서부터 들어오는 햇살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저를 품어줄 넉넉한 안방과 나그네방으로 이용하기에 적절한 두 개의 방이 있습니다. 화장실은 다소 작지만 깨끗하고, 나그네와 제가 둘러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실이 있습니다. 바닥은 매끄럽고 도배는 깨끗하고,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면 좋을까 설레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하얀색 빈 도화지 같은 집입니다.
새로 계약한 집으로 이사 가면 벌써 4번째 이사입니다. 공간을 옮겨 다닐 때마다 우리가 집에 돌아왔을 때 마음 편히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너도 쉬고 나도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작은 공간일지라도 아늑하게 꾸려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도록 신경 썼습니다. 때로는 밥 짓는 냄새가 나고 대화 소리가 나고,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고 갈등 이전에 함께 살아가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다음 공간은 그 모든 염원을 더욱 온 힘 다해 실현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시즌4라는 모험에 앞서 저는 예상치 못한 두려움과 슬픔을 경험했습니다. 어째서 매번 '이게 될까?' 하는 모험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지. 이번 나그네방 시즌4를 준비하는 과정도 여간 망설여지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 고민은 현재 나그네방에 살고 있는 두 사람과 함께 이사를 갈 것인지, 이들을 독립시킬 것인 지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 사람은 나그네방에서 독립하기 위해 회사 인근의 집을 함께 알아봐 주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아직 스스로 집을 찾아 떠나기보다 나그네방에 머물며 자립의 기반을 조금 더 쌓아가도 좋으니 함께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나그네방에서 충분히 기반을 쌓은 사람은 떠나보내고, 여전히 우리와 함께 기대어 살아가야 할 사람의 손은 놓지 않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다음 고민은 제 안위였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중히 간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멈칫하곤 합니다. 이전에는 100%의 직관이 저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면, 이제는 50%의 동력과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반 떨림 반의 생각을 저울질하곤 합니다. 내가 깜냥이 되지 않는 일에 도전하는 건 아닐까, 흥분한 마음에 책임지지 못할 일에 뛰어드는 건 아닐까. 앞으로 달려 나가는 제 옷깃을 잡고 '멈춰'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타인을 받아들여 함께 사는 일이 적지 않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너무나 책임감을 요하는 일이라서, 우리가 나그네방을 만든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집만 제공하는 게 아니라 삶을 주고받는 수고가 뒤따랐습니다. 그 수고를 감당할만한 힘이 내게 남아 있는지 묻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니 제 자신을 붙잡고 <달려가지 말고 잠깐 멈춰봐. 너 정말 함께 살아갈 힘이 남아 있어? 이번에는 혼자 살면 어때?>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했지요. 기나 긴 고민 끝에 내린 답은 '나는 나그네방 안에서 함께 살기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한 명의 나그네가 되어 이 공간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가는 일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주변에 나그네방을 도와주는 분들에게는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그네방'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존재라서, 제 자신보다 더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요. 저는 그저 나그네방의 문지기일 뿐, 나그네방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관장하는 사람이 저는 아닙니다. 나그네방 그 자체가 많은 것을 결정합니다. 저는 그저 방이 있으면 문을 열어 나그네를 맞이하고, 나그네가 떠나면 빈자리를 쓸고 닦은 다음, 다음 나그네를 맞이하는 문지기일 뿐이죠. 나그네방은 스스로 자신이 품을 사람을 찾고 받아들입니다.
임시 거주 공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방을 내어주는 이곳의 유일한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보다 더 이 방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기꺼이 내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꺼이 방을 내어주어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어 독립을 선언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그때 순서를 기다렸다는 듯 다음 나그네가 방문을 두드리고 찾아왔으니까요.
작년에는 나그네방이 갑자기 세 개로 확장되며, 방이 비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때, 서울 도심에서 방이 필요할 누군가에 닿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결과, 저는 한국에 거주하며 일하고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내국인들과 똑같은 주거 문제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외국인이 한국의 부동산을 찾아 가 집을 계약하는 일은 몹시 어려울뿐더러, 잠시 머물다 갈 타국에 수 천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맡기는 것도 불안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주로 고시원과 낙후된 주거 공간 혹은 비싼 에어비앤비에 사는 일이 많았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외국인 친구들에게 나그네방 문을 연 이후, 반년 동안 5명의 외국인 친구들이 우리 집에 머물다 갔습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은 또래 외국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함께 사는 일은 참 별 일이 아닌데, 함께 살아서 얻게 되는 유익과 배움은 너무나 많습니다. 보증금을 내고 월세집을 구하는 건 일도 아닌데, 그 일도 아닌 일 덕분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임시로 기대어 살아갈 공간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나그네방은 조용히 자리한 채로, 자신만의 구심력을 강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나그네방에서 살면 참 다양한 일이 많은데, 그 일을 저만 알고 있기 아쉬워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잘 써내려 가보려고 합니다.
함께 사는 즐거움과 어려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여러 이유들
함께 살기 위해 갖춰야 했던 태도와 무너뜨려야 했던 아집들
그리고 우리가 맞이한 기적까지.
나그네방 시즌4가 다음 챕터를 향해 갑니다.
이 여정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마치 대항해 시대에 미지의 대륙을 찾아 떠난 모험가들처럼
나그네방이 우리 삶의 닻을 거두어 돛을 펴내고 감히 상상할 수도 없던 세상으로 이끌어 가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봅니다.
연재 예정 이야기
시즌 2 해방촌에서 시즌3 보문동으로 w/정현과 사라
혹시 방 있나요? 서울에 상경한 시골 소녀 w/강산과 재은
코로나로 인해 유학 길이 막혔어요 w/성연
한국에는 친인척이 없어서 갈 곳이 필요해요 w/하영
한국에서 일하는 건 좋은데 생활하기가 어려워요 w/이탈리아 출신 Guilia
나그네방에 찾아 온 세계 여행가 w/싱가포르 출신 Gloria
닫힌 문 너머로 노크하기 w/다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