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방이 궁금하신가요?
나그네방이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한 지 두 달이 흘렀습니다. 공간은 무척이나 평온하고 따뜻해서, 우리는 겨울의 초입에도 거실 창문을 열어두곤 했어요.
새로 합류한 나그네와 집안을 정리하며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간에 우리의 생활양식이 스며들고 하나가 되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도 공간의 일부라는 사실을, 공간을 채우는 소리와 불빛, 움직임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그런데 집안의 온기와 달리 바깥세상은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사람들 사이로 '이대로 지켜볼 수 없다'는 의식이 퍼져 나갔습니다. 한겨울이라 추위를 피해 집에 있어도 부족한데 모두가 힘을 내어 거리로 나섰습니다. 어렵게 낸 힘이 찬 바람에 꺼지지는 않을까, 사람들은 촛불대신 더 밝은 응원봉을 들고 거리를 수놓았습니다.
모두가 투쟁하는 날들 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었습니다. 나그네방은 먼저 집 안의 불을 환히 켜고 떠오르는 이들의 이름을 적으며 다가올 날을 준비했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사회 속에서, 내일을 담보할 수 없는 오늘 가운데, 고마운 이들을 불러 모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야 했습니다.
촛불이 길 위를 밝히듯, 우리가 나눌 시간이 우리들 삶에 작은 불빛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요.
12월 한 달간 나그네방에 여러 친구를 초대했습니다.
시위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온 친구도 있었고, 저녁을 먹다가 시위 현장으로 돌아간 친구도 있었습니다.
식사 테이블에는 언제나 서로의 안부만큼이나 사회의 안부를 염려하는 이야기가 올라왔고, 우리는 그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불안을 우리가 위로하자며 의지를 다지곤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으며 보낸 시간을 기록합니다.
나그네방에 온 첫 번째 손님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유의미한 사회 변화를 만드는 또래 친구들이었습니다. 너무 멋있는 친구들이라 곁에 두고 싶었고, 행동하는 멋쟁이들이 우리의 친구라면 그것만큼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시위를 마치고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고, 한 친구가 사 온 슈톨렌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슈톨렌을 먹으면서, 안희연 시인의 시를 같이 읽기도 했지요.
<슈톨렌>, 안희연
"건강을 조심하라기에 몸에 좋다는 건 다 찾아 먹였는데
밖에 나가서 그렇게 죽어올 줄 어떻게 알았겠니."
너는 빵을 먹으며 죽음을 이야기한다
입가에 잔뜩 설탕을 묻히고
맛있다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중략)
펑펑 울고 난 뒤엔 빵을 잘라 먹으면 되는 것
슬픔의 양에 비하면 빵은 아직 충분하다는 것
너의 입가엔 언제나 설탕이 묻어 있다
아닌 척 시치미를 떼도 내게는 눈물 자국이 보인다
물끄러진 시간은 잼으로 만들면 된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기억을 졸이면 얼마든 달콤해질 수 있다
우리에게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우리 사회에 그런 모순이 있었다고 언젠가 회고하듯 말하게 될 날이 오겠지요. 하지만 우리들 가슴에 남은 눈물 자국, 분노의 자국은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슈톨렌을 먹으며 말했습니다. 그 무엇도 지우지 않겠다고요.
나그네방을 찾은 두 번째 손님은 한 해 동안 나그네방의 활동을 위해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은 베이크 팀이었습니다. 베이크 팀은 여러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단체들을 서포트하는 조직으로, 온오프라인 컨설팅은 물론 비영리 조직에게 필요한 테크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강력한 네트워크와 든든한 지지 기반을 가진 팀이라 곁에서 배울 점이 무척이나 많았죠.
12월 한 달간 고마운 이들을 불러 식사 자리를 준비하기로 생각한 것도 베이크 팀의 제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세 번째 손님은 나그네의 친구 분들이었습니다.
저도 처음 뵙는 분들이라 낯설었지만, 금세 식사를 나누며 대화하다 보니 이곳에 모인 우리는 영락없는 이 시대의 청춘이자, 자신의 독립을 준비하는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에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저는 기대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어느새, 주거 공간이 필요한 이들 사이로 '서울에 나그네방이라는 곳이 있대'라는 이야기가 퍼져 나갔습니다. 덕분에 도심 속 안전한 주거지를 찾는 이들이 우리를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곧 나그네방에 새로 들어올 나그네와 지금 함께 사는 나그네는 놀랍게도 같은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이 부모님에게 독립 의사를 전달하고, 나그네방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가족 간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이야기였죠.
어느 순간 우리는 부모님의 곁을 떠나 자립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물리적 자립은 물론 경제적 자립과 심리적 자립까지 함께 해야 하죠. 하지만 부모님의 둥지를 떠나 나만의 비상을 준비하는 일이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부모님들은 독립을 앞둔 자식을 바라보며 불안하고 염려가 앞섭니다.
자식들은 어떨까요? 우리는 제 힘으로 독립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는 것을 사회에 나와서 알게 됩니다. 그로 인해 제 나름의 불안과 방황을 겪고, 여차하면 다시 부모님의 곁으로 돌아가 독립을 미루기도 하지요. 모두에게는 각자의 때가 있으니 상관없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를 떠올리면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런데 나그네방을 만나는 순간 자식의 불안도, 부모님의 불안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하기 어려웠던 물리적 독립, 심리적 독립, 경제적 독립이 나그네방을 통해 조금의 기댈 곳을 얻게 되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낯설지만 살다 보면 나그네방 생활에 안심이 되고, 운영자도 나쁜 사람 같지 않으니 부모님의 염려는 조금씩 수그러듭니다. 그리고 그 염려가 사라진 자리에 자식을 향한 응원과 격려가 찾아옵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내려놓자, 내 아이의 걸음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격려가 남는 것이지요.
'너의 길을 응원한다, 그러나 언제든 우리에게 돌아와도 돼'라는 든든하고 힘이 되는 메시지를 전하는 부모님이 돼주신 것입니다. 두 나그네는 이런 과정을 통해 부모님과의 신뢰를 회복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오랜 시간 쌓였던 부모 자식 간의 오해가 풀어지고, 서로를 보다 성숙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죠.
우리는 그저 존재하는 것일 뿐인데, 이 공간이 매개가 되어 어느 가정의 회복으로, 관계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고작 몇십만 원을 내고 여러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나그네방 활동이 축복처럼 다가옵니다.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고 말하지만, 해보면 알게 됩니다. 고작 몇십만 원을 들여 이렇게 뜻깊은 일을 할 수는 없다는 걸요. 나그네방은 제가 발견한 이 세상의 보물입니다.
그래서 자꾸 욕심이 생깁니다. 나그네방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집이 있는 사람들이 제게 나그네방을 운영해 보라고 공간을 내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방이 도심 속에 열 개, 스무 개, 서른 개, 마흔 개, 백 개가 되는 날을 꿈꿔봅니다.
한 달 동안 이어진 나그네방으로의 초대는 온전한 환대와 감사를 나누며 마무리되었습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의 일상에도 나그네방의 온기가 전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