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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May 11. 2021

낯설게 하기


“만약 오늘 하루를 돌이켜봤을 때 낯섦의 범주에 들어가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면 당장 내일부터라도 낯설게 하기를 시작해보자. 우리의 삶도 얼마든지 흥행작처럼 눈 돌릴 틈 없이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     


‘낯설게 하기’는 스토리텔링에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별한 플롯 장치이다. 우리의 삶 또한 스토리텔링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낯설게 하기’는 아름다운 우리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지난 15년간 발레를 하면서 쉴 틈 없이 달려왔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무용수로 활동하게 되면서 더 큰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춤을 추며 보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쯤 연습 도중에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어 수술을 하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재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억울했다. 화가 났다. 펑펑 울었다. 6살, 발레를 시작 한 이후로 단 하루도 발레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만큼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춤을 췄다. 아무리 힘들어도 춤추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가만히 앉아 발목 운동을 할 때면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하나, 둘, 셋.... 발목을 움직이는 숫자를 세다가 도대체 이 재활은 언제쯤이면 끝나는지, 전처럼 아무 걱정 없이 높게 점프를 뛸 수 있게 될지, 다시 춤은 출수 있는 건지 걱정이 가득하다. 저기 재활 센터의 창문으로 보이는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이렇게 힘들다는 걸 알고 있을지 궁금하고, 화창한 날씨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올 때 이 지겨운 운동을 멈추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옆에서 땀을 흘리며 복귀를 준비하는 스포츠 선수들이 존경스러워지고, 재활을 마치고 경기장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을 볼 때면 부럽기만 하다. 오늘은 통증이 덜 한 것 같으면 곧 복귀 무대에 설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샘솟는다. 그러다가 또, 다시 아파오는 부상 부위가 원망스럽다.     


매일 똑같은 재활의 반복으로 점점 지쳐가는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해도 자꾸 초조해지고, 우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것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춤추는 것을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직 해보지 못한 무대가 너무 많이 남아있으니까.

그래서 난 ‘낯설게 하기’를 현재 나의 모습에 넣어본다.     


춤을 추지 못하는 지금, 평소 관심이 많았던 시와 글쓰기에 대해 집중을 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난 발레리노, 무용수로만 내 삶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춤을 원 없이 추다가 언젠가 할 수 있다면 작가가 되어 나의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냥 생각만 하고 있던 작가의 꿈을 시작해볼 수 있는 지금이 바로 적기였다.


사이버대 문예창작학과에 지원을 하고, 글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 ‘브런치 작가’가 되어 나의 새로운 꿈에 한 발짝 다가가게 되었다.     


재활 기간이 길어질수록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쓴 글들은 대부분 재활운동을 하다가 떠오르게 된 글들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게 부상 이후부터였으니 어쩌면 새로운 길을 걸어가 보라는 뜻으로 찾아온 부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라는 뜻으로.     


쉬면서 발레를 생각하는 나의 시각도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그냥 발레가 마냥 좋아서 해맑게 춤을 췄다면, 이번 부상으로 재활하고 복귀 무대에 선다면 발레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것 같다. 발레에 대한 애틋함이 생겼다. 내가 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게 있어서 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나는 분명히 그 전보다 성숙한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나의 다리는 다 낫지 않았다. 재활과 기다림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내게 온 이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만들 수 있도록 ‘낯설게’ 내 삶을 마주하겠다.     


이 시간을 현명하게 버텨낸다면,

아름다운 몸짓으로 세상을 춤추게 하는 무용수이자 좋은 글로 세상에 힘이 되는 작가가 되어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진짜 예술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필명 ‘춤추는 헤르만 헤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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