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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Jun 17. 2021

춤추는 헤르만 헤세


‘춤추는 헤르만 헤세’.

나의 필명은 중학교 2학년 때 만들어졌다.     


선화예술중학교 2학년 인성 시간,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과제는 바로 ‘나를 표현하는 별칭 짓기’였다. 남들이 붙여준 별칭이 아닌 스스로 ‘나’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여 만들어낸 별칭 짓기. 그리고 그 별칭을 선택한 이유도 함께 적어야 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춤추는 헤르만 헤세’를 나의 필명으로 하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추억에 잠겨 그때 적었던 노트를 찾아 방 책꽂이를 뒤적였다. 지금과는 다른 귀여운(?) 글씨체로 적힌 글을 옮겨 적어 보겠다.





<별칭 스토리>     


2학년에 올라와서 인성 수업 첫 시간에 선생님께서 별칭을 지으라고 했을 때, ‘와! 재밌겠다!’ 했었다. 난 내 꿈과 알맞은 별칭이나, 간결하고, 아름다운 별칭을 짓기를 원해서 오랫동안 고민 고민했다. (이때, 왜 고민을 두 번이나 썼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는 뜻이겠지.) 별칭을 발표하는 수업 5분 전에 ‘짓기는 지었는데 과연 이 별칭이 내 마음에 쏙 드는 걸까.’ 생각했다. 뭔가 더 생각하면 아! 이거다! 하고 딱 맞는 별칭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종이 치기 전까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종이 치는 순간, ‘그래!’하고 내 머리에 불이 활짝 들어왔다. ‘춤추는 헤르만 헤세’.     


난 춤을 사랑한다. 내게 ‘너에게 춤이란 뭐니?’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한다. 내게 춤이란, 딱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문장이나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냥 좋다. 춤을 추면 즐겁다. 춤이 있어 행복하고, 춤이 있어서 내가 있는 것 같다.     


또, 난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우리 엄마가 매일 책이랑 떨어지지 말라 그래서 정말 시간 나면 읽었다. 책은 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놀이터이자, 또 하나의 집 같다.     


그러다 어느 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게 되었다. 그때는 어려서 그 책 속의 깊은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쓴 문장 하나하나 속에서 왠지 모를 포스가 나왔다. 헤르만 헤세에게 관심이 생겨 <수레바퀴 아래에서>라는 책도 읽어봤는데 굉장히 멋있었다. 한 아이가 주변의 기대와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계속되는 시험,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해서 점점 타락하게 되고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는 이야기였다. 제목의 선정도 탁월했다. 그 아이의 삶이 수레바퀴 아래에 있는 삶이라고 표현한 게 아주 멋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의 삶이 아닌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고, 나를 포함한 중학생들은 그런 수레바퀴 아래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난 아니다. 왜냐하면 행복하니까.     


내 초등학생 때 꿈은 무용수였다. 근데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내가 춤을 그만두게 되면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면서 느낀 것들도 써보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써보고. 춤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면 글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     


그래서 내 꿈은 ‘세상을 춤추게 하는 무용수이자 세상에 힘이 되는 작가, 멘토.’

그 꿈을 내 별칭으로 바꾸면!! ‘춤추는 헤르만 헤세’.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띄어쓰기도 하나도 안 되어있는 어린아이의 글이지만 그래도 어릴 때부터 마냥 춤만 추는 것이 아닌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춤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 것 같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헤르만 헤세’이다.

그의 생각과 마음을 닮고 싶다. 그의 글에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사색하게 하고,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데미안>만 해도 몇 번이고 읽어봤지만 읽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와 학창 시절 읽었을 때, 성인이 되어 읽었을 때 모두 새로운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욕심이지만 나 역시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내가 훗날 세상을 떠나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헤세의 글을 찾듯이 나의 춤과 글을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그리고 사후 세계가 있다면, 헤르만 헤세를 만나 뵙고 싶다. 그에게 이야기하겠다. 당신을 닮고 싶어 ‘춤추는 헤르만 헤세’라는 별칭을 지었고, 필명으로도 사용했다고. 지치고,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 당신의 글을 읽었다고. 당신 덕분에 내가 바라는 삶을 원 없이 살아보고 왔다고.     


헤세는 어떤 반응을 보여주실까? 헤세라면 기뻐하며 내게 삶과 예술에 대해서 심오한 이야기를 해주실 것 같다. 헤세와의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해서 더욱 헤세의 책을 읽고, 헤세처럼 생각하고, 삶을 개척해 가야겠다.     


이것이 나의 필명을 ‘춤추는 헤르만 헤세’로 하게 된 이유이다.

내가 지향하는 인생을 표현한 필명.     


‘나를 표현하는 별칭 짓기’에서 시작된 ‘춤추는 헤르만 헤세’.

과제를 내주셨던 선화예술학교의 ‘강순미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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