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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애정

시즌 2 SIGN

by 이채

우리는 어떤 원료를 토대로 상상하는가? 그러니까, 무얼 포석으로 상상하는가? 그러므로 상상 그 자체의 풍요는 종종 그저 다시금 그 ‘원형(원료)’을 상기하게 하는 데 다름 아니지 않던가?


우리가 가상의 가설을 세울 때 포석 삼는 건 기본적으로 ‘필연성’이다. 우리는 발산했던 상상을 이 개연성을 축으로 필터링하고 연역하여 가상에 도달한다. 물론 그 가상이 오직 미래를 이야기하지만은 않는다. 혹여 존재했을지도 모를 저 과거와 이 현재 또한 예의 가상(역량)의 부정할 수 없는 ‘원료’이자 ‘결과’일 테니까.


그렇다면, 가설조차 세우기도 전 우리가 최초로 상상할 때 토대 삼는 포석은 과연 무엇인가? 필연성을 어떤 기준으로 나열해야 할 지마저 알 수 없을 때, 그러니까 최초의 기준을 세울 때 우리는 다름 아닌 우리 ‘욕망’을 그 포석으로 삼는다. 고로, 우리는 현실 인식 이전에 상상을 시도하듯 필연성 이전에 욕망을 학습한다. 허나, 새로움에 대한 욕망은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새로운 욕망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의 욕망은 혹자의 욕망을 모방(학습)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게 우리가 가설을 세울 때 포석 삼는 게 기본적으로 ‘필연성’이라면, 우리가 발산했던 상상을 이 개연성을 축으로 필터링하고 연역하여 가상에 도달한다면, 물론 그 가상이 오직 물리적 세계를 이야기하지만은 않을 터다. 혹여 우리 욕망의 기원일지도 모를 저기 저 타자의 욕망 또한 예의 가상의 부정할 수 없는 ‘원료’일 테니까.


우리 욕망이 외부 세계가 아닌 타자의 또 다른 욕망을 향할 때, 우리 욕망은 욕망하는 동시에 학습(모방)하고, 거기서 끝끝내 우리 욕망의 대상은 타자가 원하는 바로 그것이 되고, 따라서 우리는 타자(집단)의 필연성에 필히 수감되어 마침내는 우리의 상상까지도 저들이 상상하고자 했던 바로 그것을 향하곤 한다. 그 시절 우리는 동일시된 욕망의 노선 위에서 ‘우열’을 가늠하는데 천착할 수밖에 없을 모양이다. 모조리 동일시된 저 획일적인 ‘욕망’의 성취에 누가 더 가까이 있는지. 그때, 어쩌면 이 또한 무수한 유효성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양이다.


이 유효성은 무얼 이익으로 간주하는가? 모두가 욕망했던 그것을 성취했다는 ‘우월감’이 그것이다. 특정한 욕망이 아니라 ‘우월감’을 산출할 수 있는 환경으로서의 무작위적 ‘욕망’을 모조리 그 단위로 삼는 만큼, 그 결과인 우월감은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을 터다. 그리 동일시된 욕망의 노선 위에서, ‘(분리에 실패한)집단적 자아’ 위에서, 그러니까 욕망의 축이 외부에서 하염없이 변모하는 와중에 그 결과로서 ‘우월감’이 유일한 산출물이라는 건, 과정이 어떻든, 무얼 추구하고 쌓아올리고 있든 그가 기어이 원하는 게 스스로 저 무수하게 동일시된 집단의 욕망(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에 다름 아니리라. 이는 ‘사적으로 잃어버린(박탈된) 애착의 공적인 복귀(보상-원망)’ 외에 달리 설명되기 힘들 터다.


고로, 이는 거꾸로 욕망이 출발하던 시절에 그의 욕망이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증거이며, 저 모든 욕망이 (심지어 증오까지도) 어떤 종류의 애정(욕망의 존재에 대한 긍정/인정/허용)을 근본적인 디딤대로 삼아야, 그렇게 점차 단단해진(확인된) 욕망을 축으로 몇몇 실패에도 불구하고 쌓아 올린 정교한 가치관이 언젠가 겨우 피어날 수 있다는 증거일 터다. 최초의 단위에 대한 확인(긍정) 없이 그 단위를 토대로 연산하는 건 요원한 일일 테니까.


따라서 언젠가의 '정교한' 애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므로 일견 ‘풍요로운 상상’이라는 기호에의 과대평가는 그 자체로 욕망이 출발하던 환경 설정에 대한 반향이며, 그 원료에 대한 증거인 동시에 원망의 매개이고, 그 결과로써의 예의 ‘우월감’은 연이어 실패하는 위로와 치료에 대한 재차 시도 가능성의 자기 최면 혹은 잔여물 아니겠나. 그리하여, 이 상상에의 ‘풍요’가 주장하는 기원은 자기 자신의 ‘시원적 자아’겠으나, 그 아래 숨겨진 원료는 안정적인 환경으로써 정교하게 구성된 타자의 애정(애착)인 동시에, 박탈된 환경에의 원망(회한)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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