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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Oct 12. 2023

전시 작품 '찰나' 리뷰

전시 '심연에 대하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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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심연에 대하여 - 권리아 개인전

작가: 권리아

작품: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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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에대하여리뷰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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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라는 유한한 공간적 한계 내에서도 점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다. 또, 죽음이라는 유한한 한계 이전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종류는 무한하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같은 사물을 바라본다는 유한한 조건 내에서조차 이를 누가 바라보느냐에 따라, 또 동일 관찰자라는 유한한 조건을 재차 가정하는데에서조차 이를 언제 바라보느냐에 따라 무한한 관찰 결과가 산출될 수 있으리라.


간혹 우리는 이전 순간과 다음 순간을 포착하고, 그 간극의 ‘지속’을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할 적도 있을 텐데. 문제는 그 포착이 관찰자에 따라, 또 같은 관찰자에게라도 당사자의 관찰 시간/상황 시점에 따라 다르다는 데 있다. 요컨대 절대적 현실이라는 유한 속에서 그 감상과 해석의 상대성만 볼라치더라도 누구든 무한히 많은 독해를 추정할 수 있지 아니하던가.


그러나 과연 우리가 실제로 ‘순간’을 포착할 수 있기는 하던가? 우리는 포착할 ‘순간’의 조건들을 어디서 가져오나? 이를테면 우리 기억의 특정 순간이 X와 Y좌표로 이루어져, 해당 지점의 속도(기울기)를 추정한다는 ‘목표’ 아래서야 우리는 X와 Y좌표들을 눈여겨 기억할 터다.


그처럼 우리가 기억하고 포착하고자 하는 조건은 저기 저 ‘목표’와 결부되어 있다. 그리 설정된 목표는 여러 조건을 지명하여, 우리가 해당 지속들을 추정하기 위해 필요한 순간들을 포착하기도 전에 포착하려는 주의력의 양상을 미리 구성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포착하는 ‘순간’조차 이미 마련된 ‘지속’ 위에 어떤 ‘범주’로서 포함되어 작동한다. 다시 말해 제아무리 ‘순간’이라는 유한 속에 무한을 가두고자 하더라도, 그리 갇힌 채로라도 유한하게 조건 지어진 무한이 그 안에서 작동하는 셈이다.


쏟아지는 폭포를 사진 속에 유한히 가두는 것, 이어지는 삶을 정지된 단상 속에서 다루는 것은 순간을 포착해 전혀 새로운 채널의 지속으로 가져오는 작업이기도 하다. 가령 어느 기억이 처음에는 트라우마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느 시점에 이를 떠올리고 재해석하는지에 비롯해서 재차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으므로. 그처럼 혹자가 지속 안에서 ‘지속과는 다른’ 특정한 ‘순간’을 포착하고 이후 재해석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실은 저기 저 포착과 해석의 순간들조차 임의로 한정된 ‘지속’에 다를바 없다.


이른바, 온갖 사물이 제아무리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 하더라도, 그리 사물 끼리라 가정하더라도 그 나름의 서로 구분된 한계 내에서야 나름의 다양성을 가질 수 있겠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한계 속에서, 그와 아울러 나름의 상대성을 비로소 가지는 셈이다. 무한한 상대성의 외곽(형상)을 한계짓는 유한, 이를테면 찍힌 점으로서 순간이 아니라 단위 지속으로서의 순간, 그리하여 ‘가정된’ 찰나가 하나의 개념으로 바로 여기 또 달리 목도될 수도 있으리라.


거기엔 찰나에 대한 어떤 작업, 이를테면 지속을 순간으로 재차 한정하여 해독하는 작업이 자리할 수도 있겠다. 우리 삶은 거시적인 범주에서 보면 재량이 차고 넘치는, 그처럼 얼마든지 무궁무진한 가능성 위에 스스로 구성할 수 있는 ‘지속’으로 해독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무한의 가능성은 ‘찰나’의 유한으로 한정될수록 축소되어 보인다. 비록 그 안에 무한이 잠재되어 있더라도, 단편적인 삶의 한정된 범주는 언제나 찰나의 유한성 안의 몇 안되는 부러진 가능성과 함께 있으므로. 이를테면 우리는 어느 길로든 멀리 돌아서라도 어쨌거나 무수히 많은 길로 다닐 수 있지만, ‘기술의 도움 없이 날아서’ 다닐 수 없다는 한계 위에서만 예의 가능성을 행사할 수 있다.


비록 영영 불가하다 하더라도 그처럼 찰나를 포착하고자 시도하는 건 우리 삶의 유한한 수동성을,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을, 무한히 다양한 익명의 세계 속에서도 저 나름의 한계지어진 이름을, 그리 삶에 표기된 서명을, 설령 그게 비극일지언정 부정할 수 없을 고유한 삶의 행로를 증언하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하지 않을런지. 그런 의미에서 유한은 소위 무한(가능성)의 대척점으로서의 불행일 리 없으며, 유한이건 무한이건 그저 삶(운명)에의 긍정만이 무한이란 가능성과 유한한 형상(책임)을 아우르며 거기 재차 소급되곤 하는 '찰나'의 교차로를 관통할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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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아트

#사이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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