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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Oct 13. 2023

전시 작품 '애도' 리뷰

전시 '심연에 대하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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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심연에 대하여 - 권리아 개인전

작가: 권리아

작품: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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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에대하여리뷰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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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변하고, 그처럼 변한다는 건 ‘미래’에 관한 담론 여부를 떠나, 어쨌든 익숙한 ‘과거’를 잃어버리는 걸 뜻하지 않겠나.


그러므로 누구의 관념이건, 주관 세계는 늘 ‘흉터’에 기반하고 있을 양이다. 간혹 이 흉터가 상실에 기반하지 않은 상처였다고 주장되더라도, 최소한 이 흉터는 우리 자신이 자기 ‘자아’를 얼마간 상실했던 경험과 결부되어 있을 테니.


우리는 원하는 그것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자신이 될 수도 없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걸 가진 이상적인 자신이 될 수도 없다. 가령 우리가 그토록 이상적인 이미지로 간주했던 지점에 혹여라도 스스로 도달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헛돌지 않기 위해 새로운 과녁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지 않던가. 누구든, ‘차분한 자신’이라는 상상 속 이미지에라도 어떤 과녁을 잠정적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와 같이 살핀다면, 우리네 과녁은 온갖 방법으로 상실된다. 언젠가 가졌다가 박탈당하는 사후적 상실이건, 가지고자 하나 가질 수 없는 사전적 상실이건, 또 이미 성취해 버린 이미지와 같이 과녁에 도달해 더 이상 추구할 대상이 사라지는 과녁의 상실이건 간에.


따라서 그가 어떤 성취의 징검다리를 의도했고 건너왔는가로, 그 자신이 무얼 자기 자아로 간주했는지, 그래서 어떤 상실만이 그에게 상실이었는지 소급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와 같이 사후적이건 사전적이건, 이 무수한 상실의 사슬들로 역추적해 볼 수 있는 건 예의 자아의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걸어온 역사일 모양이다. 그의 자아가 무얼 희구하고 또 무얼 상실로 간주하는지는 실로 같은 동전의 양면일 테니.


고로, 상실이 자아 어느 부분의 죽음이라면 애도는 그 죽음에의 수긍 아니겠나. 그와 같이 종종 주관 세계에서 사건은, 당사자가 당 사건을 납득할 수 있는 역량과는 별도로 벌어진다. 그리 남겨지는 건 통제 바깥의 예기치 못한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 사건을 점차 받아들여야 하는 납득의 과업이다. 그리고 이 과업 또한 하나의 사건이리라.


그처럼 애도는 환상과 현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상실이 그저 우리가 막을 수 없던 현실이었다면, 우리 내면이 저 내면의 환상과는 완전히 다른 이 상실로서의 현실을 비로소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애도일 테니까. 여기서 구분되는 건 필연성의 층위들이다. 우리가 상실 자체와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기실 저기 저 상실을 부정하는 바와 다를 바 없는 괴리된 상태에 처할 터다.


이를테면 우리는 유년을 잃고, 젊음을 잃고, 삶을 잃는다. 우리는 자아의 일부를 다른 무엇과 교환하다 생명까지 교환할 예정이다. 여기엔 가치 기준이 없다. 동일 가치 간의 교환이 아니라, 그리하여 항구적으로 그 '전체'의 가치가 유지되는 게 아니라 그저 변할 뿐이다. 기준 없이 사건만이 있는 절대적인 층위에선 아무도 무엇의 가치를 판단하지 못할 테니. 그처럼 문제는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판단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종종 유년과 젊음과 삶을 덧없이 희구하곤 한다. 그건, 우리가 이를 상실하지 않은 까닭이 아니라, 일어난 상실과 일어날 상실 전부를 아직 덜 애도한 까닭이다. 과연 무슨 애도가 끝날 수 있겠나. 그처럼 과연 어떤 자아가 완성될 수 있겠나. 결코 누구도 상실로부터 독립할 수 없으리라. 허나 애도의 이 절망적 불가능 위에서도, 이미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몰래 애도를 시도하는 중이다.


상실의 미련이 그처럼 아련히 남아 우리 삶을 영영 떠돈다손 치더라도, 그리 떠도는 지평과 억지로라도 괴리된 나약한 일상으로라도 우리는 삶을 지탱이나마 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 자아였던 일부가 자아와 분리되어 죽어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는 이 애도는, 익숙해질 수 없는 방식으로만 삶에 누적될 모양이다. 상실이 삶에 누적되고, 자아의 죽음이 누적되고, 그렇게 우리는 죽어간다. 우리는 완결되지 못한 애도 중에 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살아간다. 언제나 우리는 얼마간 괴리된 상태에 처해 있다.


혹 언젠가 스스로 예기치 못할 현실을 통제하고자 그토록 애썼을지도 모르겠다. 또 언젠가부터 통제할 수 없는 일을 스스로 받아들이고자 그리 애쓸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의 불행을 애도하면서도, 어쩌면 아울러 자신의 ‘자아’를 영영 그리 애도하고자 할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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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아트

#사이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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