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우와 다니게 된 이후, 그에게서 이유 모를 웃음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속 시원한 음색은 당연히 아니고, 도리어 한층 답답한, 그러나 참고 참는 와중에 기어이 밖으로 토해내는 기묘한 소리다. 차라리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나설 때라거나, 방학이 시작하는 날이거나 하다면 현수의 기억에 이토록 깊이 남지는 않았으리라.
지금 다시 그 소리가 들린다. 국사 시간이다. ‘너 왜 웃어?’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으나, 아마 해당 학생의 대답 여하에 따라 질문의 뉘앙스가 완전히 결정 날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녀석이 손사래를 친다. ‘그래서, 왜 웃은 거야?’ ‘아. 흥선 대원군이 수교를 거부한 건 알겠는데, 거기에 <통상수교 거부정책>이라는 이름을 굳이 지어서 부르는 게 재밌다고 생각해서요.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래.’ 잠시 상념에 잠겼던 강사가, 짧은 수긍과 함께 수업을 이어간다.
그렇게 방학 끝무렵, 학원을 마친 후 늘 그랬듯 현수의 집에서 오후를 보내기로 했다. 둘의 하굣길 중에서도 여전히 피식대는 걸 발견한 친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묻는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아까 왜 웃은 거야?’ ‘말했잖아. 오늘 왜 이런 것들이 웃긴지 모르겠네.’ ‘그럼 지금은 왜 그러는데?’ ‘저기’ 고양이를 가리킨다. ‘저게 왜?’ ‘너무 약한 거 같지 않아?’ ‘그게 웃기냐?’ 철우가 인위적으로 차분한 상태를 가장하자, 목소리가 낮아진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집에서 아령을 들 때가 있거든.’ 여전히 의뭉스러운 현수에게 그가 재차 말을 덧붙인다. ‘그때, 단 5킬로짜리 작은 아령으로도 내 정강이를 찍으면 아주 쉽게 부러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근데?’ ‘그게 너무 웃겨.’ 그는, 말을 마친 후 또 웃는다.
현수는 이런 장면을 몇 번 보긴 했지만, 여태 적응되질 않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둘 중 한 사람이 진지한 표정인데 나머지 한 명이 웃고 있는 희한한 이 순간 덕분에라도 웃음을 멈출 수 없다고 한다. 그럴 때면, 고양이뿐 아니라 길거리의 강아지나 비둘기, 참새에도 쉽사리 낄낄대기 시작한다. 다행히 오늘은 금세 멈췄는데, 정신을 차리고 의식적으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각오가 생긴 양 묘하게 오랫동안 숙연한 낯빛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하던 대로 그는 만화책을 읽고 철우는 자기가 가져온 책과 만화를 번갈아 본다. 이제, 사소하지만 잊기 어려울 단서가 잡힌다. 그건, 집에서는 현수의 친구가 한 번도 웃지 않더라는 사실이다. 만화책을 읽으면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피식거리지조차 않는다.
독서에 이은 대화가 끝나 홀로 남겨진 현수가 퇴근하는 부모님을 맞이한다. 고요한 적막이 몇십 분 동안 집 내부를 떠돌다, 이내 지친 얼굴의 어머니와 마주친다. ‘엄마 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버지도 들어온다. ‘아빠 왔다.’ 이상한 반복이다. 어두운 밖과 대비되어 밝고 멀끔한 실내에서 지친 어른들의 내색이 묘하게 우습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