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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Feb 16. 2024

드라마 '살인자ㅇ난감' 리뷰

이고 살던 삶의 '사소한' 무게들이 번거로울 때, 혹자는 타협을 시도한다. 한줄 한줄 신경 써야 하는 사소한 일상의 검산들을 힘껏 뒤로 미룬 채, 자랑스러운 '사명'이나 인류애적인 목표 의식을 앞세우는 그 순간 그의 '사소한 단점'은 자아의 의식 내부에서 힘껏 말소되는 모양이다. 저 비대한 소명 앞에서 사소한 단점들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믿고 싶은 까닭이리라.


목적이 그만치 자랑스러울수록 과연 과정은 자의적으로 얼만치나 정당화되는가. 유효성의 탐구를 뛰어넘는 자기 정신의 자의적 승리가 너무도 중요하여, 어쩌면 누군가는 순교를 자청할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어떤 자청된 순교를 비용으로 하는 신앙 넘치는 호소에도 1+1은 2가 아니던가. 과정이 목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듯, 행동이 당사자의 과거 트라우마로 정당화될 수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그 무슨 옳음도 개인의 다짐으로는 물론이고 제도적으로도 못 박힐 수 없을 모양이다. 그저 상황에 따른 끝나지 않는 고민만이 남을 뿐이다. 어느 독일 철학자의 실패한 유아적 기획에서처럼 무슨 타고난 '본래성'을 가정하여 어떤 민폐에도 정당성을 부여하고 저 모든 고민을 힘껏 외면하는 관성은, 자랑스러운 응석을 무수히 겹쳐 현실을 병리적으로 외면하는 데 삶의 전 여력을 소진하도록 종용하고 있으리라. 그저 거기에는, 누구나 다 이렇게 자기 욕망대로 사는 게 아니냐는 응석(열등감) 외에 무슨 대사가 남아있으랴.


심지어는, 삶의 여로에서 '학습'해야 하는 '책임'이나 '죄책감' 등은 결코 '타고난' 것일 리 없을 양이므로. 그와 같이, 타고난 정신적 패턴으로 한 치도 변명할 수 없고 없어야 하는 까닭에, 도리어 그로 인한 변명의 수단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가정된 서사가 종종 쫓겨 '굳이' 상상되고 있지 않나. 그러나 그러한 상상 자체가 증거하는 건, 우리네 책임과 죄책감에서 우리 자신이 어찌나 도망치고 싶어 하는지, 그 '두려운' 정도일 테다.


검산 없이 내달리던 어느 날, 그리 '두려워하던' 검산 위에 마침내 멈춰 선 그가 자기 검산에 심각하게 짓눌릴지언정, 그렇게 언젠가 본격적으로 짓눌려 본 적이 있기는 해야 어떤 충실한 고민과 자유가 그 삶과 함께 동행할 수 있을 양이니. 자유는 오로지 타인의 자유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의 자유만이 자유라고 정의될 수 있을 테지만, 이러한 자유를 구체적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는 당연히 끝나지 않을 구체적 고민을 호출하는 주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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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ㅇ난감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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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대한 윤리적 관점에서는 언제나 능력과 역량이 문제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은 권리와 동일한 것이다. 자연의 참된 법칙들은 의무의 규칙들이 아니라 능력의 규범들이다. 그래서 금지하고 명령하려는 도덕 법칙은 일종의 신비화를 내포한다. 우리가 자연 법칙들, 삶의 규범들을 이해하지 못할수록, 더욱더 그것들을 명령과 금지로 해석하게 된다. 철학자가 그 말을 사용하기를 주저할 정도로 법칙이라는 말에는 도덕적 여운이 짙게 서려 있다. 차라리 "영원 진리"라는 말을 쓰는 편이 더 낫다. 사실 도덕 법칙 혹은 의무는 순전히 시민적이고 사회적이다. 오직 사회만이 지시하고 금지하고 위협하고 희망을 갖게 하고 보상하고 처벌한다. 물론 이성도 도의심pietas과 종교religio를 포괄하며, 이성의 수칙, 규칙 혹은 "명령"이 있기는 하지만, 그 명령의 목록만 봐도 그것이 의무들이 아니라 영혼의 "힘"과 그것의 작용 역량에 관한 삶의 규범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이 규범들이 통상적인 도덕 법칙들과 일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한 일치는 그렇게 빈번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도덕의 명령이나 금지와 유사한 어떤 일을 이성이 권하거나 고발하더라도 이성은 언제나 도덕의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이유로 그렇게 한다. 『윤리학』은 감정, 행동, 의도를, 초월적 가치가 아니라 그것들이 전제 혹은 내포하는 실존 방식과의 관련 속에서 판단한다. 약하고 노예 상태이고 무능하다는 조건에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 심지어 말할 수도 믿을 수도 경험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있고, 자유롭거나 강하다는 조건에서가 아니면 할 수도 경험할 수도 … 없는 다른 것들이 있다. 내재적인 실존의 방식들에 의한 설명 방법이 그렇게 초월적 가치들에 의지하는 방법을 대신한다. 어쨌든 문제는 이것이다. 예컨대 그 감정은 우리의 작용 역량을 증가시키는가 아닌가?


질 들뢰즈 /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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