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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Jul 14. 2024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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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엄마를 불렀는데 엄마가 오지 않는다면 아이는 그의 부재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 엄마를 대체할 대상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엄지손가락일 수도 있고 인공 젖꼭지 혹은 그 외의 대체물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아이가 세상과의 상호작용에서 객체화를 이루게끔 도와주는 의미와 상징의 놀이를 하는 것이다.

융합과 분리가 일어나는 공간에서 아동은 자신의 창조성이 드러나는 경험을 할 것이다. 창조성은 아동이 주체성을 갖고 공동체 안에 들어가도록 만든다. 도날드 위니컷은 이를 ‘중간적 공간’이라고 부르는데, 아이가 자아와 비자아 사이에서 겪는 경험들을 말한다. 이는 놀이와 자신과 맺는 관계들을 통해 아이가 비로소 독립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앞서 살펴보았듯 근본적으로 영아는 스스로 분리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아는 스스로가 자신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느낀다. 그는 자신이 전능하다는 환상에 빠져 있는데, 이 전능함의 경험 속에서 대상은 발견되는 동시에 창조된다. 아기는 환상(만들어진 대상)과 현실(발견된 대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아와 비자아를 구별하지 못한다. 아이가 대상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되면 그 대상을 파괴하려 할 것이다. 대상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면서 대상으로부터 분리되려는 충동을 느낄 것이다. 아이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전능함을 확인하려 한다.

놀이는 아이가 가지는 대상 통제력에 대한 환상을 없애주고 자유의 감정을 느끼게끔 해준다.

장 샤를르 부슈 / 악성 나르시시스트와 그 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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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에 서투른 자들은 여러 번의 주사위 던지기, 무수한 주사위 던지기에 기대한다. 그래서 그는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조합을 낳기 위해서 인과성과 확률성을 이용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조합 자체를 인과성 뒤에 숨겨진 획득해야 할 목적으로 간주한다. 니체가 영원한 거미, 이성의 거미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그것을 <거대한 거미줄, 인과성의 거대한 망 뒤에 자신을 숨기고 있는 일종의 지상 명령이자 최종 목적인 거미>라고 말한다. 우리는 루이 11세와 더불어 싸웠던 무모한 샤를르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보편의universelle 거미와 싸운다>. 인과성과 목적성의 집게발로 우연을 잡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 우연을 긍정하는 대신 주사위 던지기의 반복에 기대하는 것, 필연을 긍정하는 대신 목적을 흐릿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놀이에 서투른 자의 모든 놀이 방식이다. 그것들은 이성 속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면 그 이성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복수심이다. 즉 거미인 복수심일 따름이다. 주사위 던지기의 반복 속에서의 원한, 그것은 목적에 대한 신념 속에서의 가책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다소간 그럴 듯한 상대적인 수 이외에 결코 아무것도 획득하지 못할 것이다. 우주는 목적이 없다는 것, 즉 인식할 원인이 없듯이 소원할 목적도 없다는 것이 바로 제대로 놀이를 하기 위한 확신이다. 사람들은 한 번에 우연을 충분히 긍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사위 던지기에서 실패한다. 모든 조각들을 필연적으로 결합시키고, 주사위 던지기를 필연적으로 한 번 더 하도록 하는 그 운명적인 수가 생겨날 만큼 그것을 충분히 긍정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의 결론에 가장 큰 중요성을 결부시켜야만 한다. 즉 니체는 인과성과 목적성, 확률성과 목적성의 쌍, 이 항들의 대립과 종합, 이 항들의 거미줄을 우연과 필연의 디오니소스적 상관 관계, 우연과 운명의 디오니소스적 쌍으로 대체한다. 여러 번 되풀이하는 확률이 아니라 단 한 번의 모든 우연이며, 욕망되고, 의욕되고, 소망된 최종 조합이 아니라, 운명적인 조합, 즉 가장 사랑하는 운명적인 조합, 다시 말하자면 아모르 파티amor fati이고, 주사위 던지기 횟수에 의한 어떤 조합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운명적으로 획득된 수의 본성에 의한 주사위 던지기의 반복이다.

질 들뢰즈 / 니체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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