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cked』 속 엘파바를 다시 읽다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비난받는 삶은, 누구에게나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형벌처럼 느껴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과 환호, 혹은 최소한의 이해나 공감이라도 원한다.
세상의 시선은 잔인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마지막 끈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위키드』 속 엘파바는 어떻게 그러한 끈 없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었을까?
소설 속에서 엘파바는 ‘사악한 서쪽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환호하며 마치 축제를 여는 듯한 기세로 기뻐한다.
아무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이야기 속 엘파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 속 이미지처럼 악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은 따뜻한 소녀이다.
그런 소녀는 어떻게 서쪽 마녀라는 평생의 낙인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화자인 나는 그 이유를 엘파바의 ‘사람들’, 그녀의 인연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경멸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학교에서 생긴 첫 번째 친구가 바로 글린다였다.
세상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금발 소녀와, 세상으로부터 지탄받던 초록의 소녀.
둘의 우정은 얼핏 보면 코믹하고 단순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린다를 통해 엘파바는 **처음으로 세상의 시선을 “견디는 것”이 아닌 “이겨내는 것”**을 배운다.
그동안 엘파바는 조용히 참아내며 살아왔다면,
글린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필요하다면 설득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주변을 변화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엘파바는 글린다의 모습을 보며 비로소 깨닫는다.
“세상에 내가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에 나를 관철시킬 수도 있구나.”
그녀는 글린다에게서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엘파바의 삶에 또 하나의 변곡점은 연인 피에로다.
처음 등장할 때 그는 그저 철없는 왕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등장 자체에는 뜻깊은 의미가 있다.
글린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어가는 인물’이라면,
피에로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사람, 즉 숨어 있는 진실을 감지하는 인물이다.
초기에는 그저 일탈을 즐기고 싶어 하는 부유한 청년처럼 보이지만,
엘파바와 시간을 보내며 그는 점점 소문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피에로는 엘파바를 향해 조건 없는 지지와 믿음을 보낸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시끄럽든,
그는 그녀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해 준다.
엘파바에게 피에로는
“세상이 나를 오해해도, 누군가는 진실을 본다”
라는 희망 그 자체였다.
많은 이들이 『Wicked』를 ‘억울한 누명을 쓴 엘파바의 이야기’로 기억하지만,
이 소설이 진짜로 말하고 싶은 건 ‘세상의 무지’가 아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그녀를 온전히 바라봐준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엘파바가 성장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엘파바를 “사악한 마녀”라 불렀지만,
그녀의 진짜 힘은
그렇게 부르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자신을 향해 다가온 단 몇 사람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지켜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초록의 소녀는 결국 ‘세상 전체와 싸운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해 준 극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끝까지 버텨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우리가 엘파바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