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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언제나,
사소한 얼굴을 하고 온다

by 이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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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폭력을 떠올릴 때 늘 거대한 장면을 먼저 생각한다.
뉴스 속 조직, 대기업 회장, 힘 있는 사람들.
하지만 내 일상에서 가장 또렷하게 남은 폭력은
그런 장면들이 아니었다.


폭력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나보다 한 계단 위에 앉아 있다는 이유로,
조금 더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혹은 그냥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타인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들은 특별히 나은 사람도 아니었다.

능력이 뛰어난 것도, 책임감이 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소한 우위를 ‘면허’처럼 사용했다.

서류를 책상에 툭 던지는 습관, 약속을 깨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그 정도는 넘길 줄 알아야지” 하고
무심히 내뱉는 말 한마디. 큰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그 사소한 순간들이 오히려 더 깊은 상처가 되었다.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파고드는 방식으로.


나는 그때 알았다. 폭력은 거창한 곳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폭력의 본질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나보다 조금 유리한 자리에서
그 사실을 모른 척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무너지는 이유는

대단한 사건 때문이 아니라 이 작은 무심함들이 쌓여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의 바닥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큰 목소리가 아니라
이 사소한 권력들을 자각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사소함을 당연하게 만들지 않는 태도라고.

폭력은 늘 사소한 얼굴을 하고 우리 곁을 지나간다.
그것은 잔인하게 나의 밑바닥을 건드리지만

문제는 누군가에게 하소연 하기에도 정의를 구하기에도 너무 작은 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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