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최근 APEC 기간에 한국 기업들이 GPU 26만 장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GPU 26만 장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단순히 ‘반도체를 많이 샀다’는 수준을 넘어, AI 시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을 확보했다는 뜻에 가깝다.
먼저 AI를 간단히 짚어보자. AI 모델은 추상적인 기술이 아니다.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넣어가며 수십억~수백억 개의 행렬 연산을 반복하는 초고도 계산 과정이다. 인간이 직접 계산한다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도 끝낼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작업이다. AI 모델이 '설계도'라면, GPU는 이 설계도를 실제로 가동하는 공장 설비에 가깝다. 즉, GPU 없이 AI 기술을 만들 수 없다.
오늘날 ChatGPT, 구글 제미나이, 테슬라 자율주행, 네이버의 AI 서비스가 모두 가능해진 이유 역시, 뒤에서 연산을 담당하는 반도체 칩, 특히 엔비디아의 GPU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성능이 좋은 AI 반도체는 엔비디아의 H100과 차세대 ‘블랙웰(B100)’ GPU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같은 빅테크들도 이 GPU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 중이고, GPU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돈을 주어도 원하는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주요 기업(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네이버, 정부기관)이 총 26만 장 규모의 GPU를 확보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곧 한국이 대규모 AI 모델을 직접 학습하고, 자체 AI 기술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를 손에 넣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를 생각해 보자. 삼성은 스마트폰·가전·서버 같은 완제품을 만들고,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기업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다음과 같은 혁신을 가능하게 한다.
반도체 공정의 수율을 높이는 제조 AI
공장 자동화·불량 감지 모델
스마트폰의 온디바이스 AI 기능(동시통역, 비서, 사진 분석 등)
시스템 반도체 설계 효율 향상, 시뮬레이션 가속
즉, GPU 확보는 삼성의 모든 사업 영역을 강화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엔비디아 GPU에는 반드시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라고 불리는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HBM을 세계에서 안정적으로 대량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뿐이다. GPU 수요가 늘어날수록 한국 메모리 기업은 훨씬 더 큰 매출과 기술적 영향력을 얻게 된다.
엔비디아의 GPU 공급을 보며 나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GPU 수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도 엔비디아가 한국 기업들에 일정 물량을 공급한 것은, AI 산업의 핵심 공급망인 HBM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메모리 공급 없이는 엔비디아의 성장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AI는 아직 국제적으로 정해진 ‘표준’이 없다. 기술은 보통 표준을 중심으로 발전하는데, AI는 이제 막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초기 단계다. 엔비디아는 GPU라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CUDA라는 AI 모델을 만들 때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생태계까지 장악하여 사실상의 표준을 만들려 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대기업들이 합류했다는 사실은, 기술 표준 경쟁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결론적으로, GPU 26만 장 확보는 단순한 부품 구매가 아니라 한국 기업이 AI 시대의 경쟁력을 갖추는 대규모 투자이자 국가적 도약의 발판이 된다. 엔비디아에게도 한국은 핵심 파트너이며, 한국 기업들에게도 이번 확보는 미래 산업의 흐름을 선점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