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려진 엔지니어 정체성과 무너진 보상체계
이번 글은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의 기술 공화국, KBS 다큐멘터리 인재전쟁, 그리고 페이팔·팔란티어 창업자 피터 틸의 자서전 Zero to One을 읽고(시청하고) 느낀 점을 나의 시각에서 풀어본 것이다.
오늘날 엔지니어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다. 컴퓨팅 비용은 크게 낮아졌고, 에너지·통신·AI 등 다양한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엔지니어는 과거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를 쥐게 되었으며, 정보와 기술 접근성은 무한히 넓어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도구들이 인류의 행복과 평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과거의 엔지니어들은 오늘보다 훨씬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주도했다. 미국은 제로 상태에서 사람을 달에 보내고, 핵무기·항공모함·원자력 잠수함·반도체 기술 등을 개발해 인류의 방향을 바꾸었다. 한국은 무일푼에서 반도체 공장을 세워 일본과 미국을 압도했고, 조선·스마트폰·자동차 산업을 일구어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오늘날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한때 반도체가 발명되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SNS 알고리즘과 광고 기술에 집착한다. 한국은 ‘의대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공학의 미래가 희미해졌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엔지니어는 인류가 꼭 해결해야 할 문제에 기여하면서도 강력한 보상을 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인물들의 수와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엔지니어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보상 체계가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라 생각한다.
의사·변호사·교사·경찰·군인 같은 직업은 미디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사의 경우 의학 지식과 도구로 사람을 치료한다는 사실이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만 보아도 선명하다. 그러나 엔지니어라는 직업은 여전히 추상적이다. 공대생인 나조차도 “공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직업” 정도로만 설명할 뿐, 그 이상 구체화하기 어렵다. 대중에게 알려진 젠슨 황이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도 있지만, 그들이 기술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눈앞에 선명하고 구체화된 이상향이 없는 것이다.
보상 체계 또한 문제다. 미국이 한국보다 나은 편이지만, 그곳에서도 전시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보다 SNS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일이 더 높은 급여와 스톡옵션을 보장한다. 한국은 의사·변호사의 급여가 엔지니어의 두세 배에 이르는 경우가 흔하다. 인류의 중요한 문제에 기여하며 많은 보상을 받던 과거의 엔지니어상은 점점 흐릿해졌다.
나의 주변을 보아도 엔지니어의 길을 걸을 이들이 ‘정체성의 부재’를 겪는 경우가 많다. KAIST 동기들 대부분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지만, GPA·스펙·연구실 경험 같은 조건에만 매달리고 정작 “왜 대학원에 가야 하는지,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좋은 배를 만들었지만 조타기가 없어 바람에 표류하는 것과 다름없다. 무엇을 먼저 고민해야 할지 다시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엔지니어가 다시 거대한 프로젝트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공유 가치와 강력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메타가 핵심 AI 엔지니어를 수천억 원에 영입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는 마치 스포츠 스타의 이적과 같다. 우리는 이런 인센티브를 다양한 엔지니어링 분야에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인류의 행복·평화·자유 같은 공유 가치가 분명히 제시되어야 한다. 엔지니어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롤모델과 지향점 또한 필요하다.
평지에 서 있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지만, 그 위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있으면 모두 그곳을 주목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유 가치와 강력한 인센티브가 결합될 때, 거대한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엔지니어 정신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