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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키포스트 May 03. 2022

70년 동안 돌려쓴 역대급 자동차 플랫폼, 현대차는?

플랫폼.


생소하실 수도 있는 이 단어는 대강 차체의 기본 뼈대를 지칭하는 말 정도로 알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자동차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플랫폼을 돌려쓰면 개발비용의 절감이나 부품 호환성 증대 등 다양한 이점을 갖습니다. 이런 이유로 거의 모든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것을 장기간에 걸쳐 다양한 차종에 돌려쓰곤 하죠.

그런데 일부 플랫폼은 수 십년에 걸쳐 사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차 J 플랫폼 1990 ~ (32년, 생산 중)

첫 번째 주자는 현대차의 J 플랫폼입니다. 포르쉐를 창피하게 했던 전설의 그 차, 엘란트라를 기억하시나요? “엥...? 저 낡은 차 얘기를 왜 꺼내?”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만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이 차에 쓰였던 J 플랫폼은 놀랍게도 아직 생산 중이기 때문이거든요.

무려 6세대에 걸친 긴 세월 동안 개선에 개선을 거친 J 플랫폼은 완성도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이 플랫폼으로 출시된 차들도 쟁쟁한데요. AD까지의 모든 아반떼, K3, 쏘울, 포르테, 스포티지 등 현대/기아차의 준중형 라인업의 거의 모든 차를 J 플랫폼 하나가 책임져 줬습니다.

또, 이 플랫폼에서 파생된 친환경 차 전용플랫폼 Eco-Car는 기아 니로에 탑재되었는데요. 최근 공개된 니로 플러스 또한 이 니로를 기반으로 하니 앞으로도 한동안은 J 플랫폼 기반 차량을 앞으로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겠습니다.


벤츠-W124 E클래스 플랫폼 1984~2019 (35년)

컴퓨터 설계 시대의 서막을 알렸던 벤츠 W124의 플랫폼은 높은 완성도를 띄며 무려 1984년부터 1996년까지 생산되는 저력을 보여줍니다. 12년의 활약 끝에 퇴역할 것만 같았던 이 플랫폼은 어처구니없게도 동양의 먼 나라에서 인생 2회차를 맞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쌍용차의 체어맨. 기술제휴 중이었던 쌍용차에서 W124의 플랫폼을 가져다가 체어맨을 만든 것이죠. 당시에 E세그먼트(중형차)의 플랫폼을 가지고 F세그먼트(대형차)를 만들어낸 만들어낸 쌍용 기술진에게 벤츠가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일담이 있습니다.

96년 시점에서도 사용하기 나쁘지 않았던 플랫폼이라 쌍용에서는 이 플랫폼을 활용해 여러 차를 만들어보는데요. 그렇게 시장에 등장한 차가 못생김의 전설 로디우스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온 게 코란도 투리스모이고, 코란도 투리스모가 단종된 해가 2019년이니 무려 35년간이나 활약한, 장수플랫폼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GM-V 플랫폼 1966~2007(41년)

GM은 일찌감치 여러 자회사의 차종에 통일된 플랫폼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서 다뤄볼 V 플랫폼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죠.

1966년 오펠 레코드 C형에서 처음 도입된 이 플랫폼은, 향후 등장하는 모든 레코드의 플랫폼으로 사용됐습니다. 특히 그 다음 세대 모델인 레코드 D를 한국에 들여와 손봐서 팔기 시작한 게 바로 대우차의 로열 시리즈죠.

한국에서 로열 시리즈만으로 72년부터 91년까지 19년, 이어서 프린스, 브로엄으로 99년까지 장장 27년을 써 왔기에 더이상 사용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기 쉬울겁니다.

하지만 어림도 없죠. 앞서 GM에서 여러 자회사와 플랫폼을 돌려 사용했다고 말씀드렸죠? 2005년 한국GM에서 스테이츠맨을 출시하는데, 이 차 역시 V 플랫폼을 사용하던 홀덴 카프리스를 그대로 들여온 차입니다. 호주에서도 V플랫폼을 뼈가 녹아나도록 어마어마하게 우려먹고 있었던 거예요.


V 플랫폼은 2007년 다음 세대 제타 플랫폼을 사용한 신형 카프리스가 등장하고서야 비로소 41년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GM-B바디 플랫폼 1926~1997(71년)

B바디 플랫폼역시 GM의 작품입니다. 이 플랫폼의 등장은 무려 1926년, 아직 순종 황제가 살아있던 시기이기도 하죠. 원래 GM 사의 풀 사이즈 대형차 라인업을 커버하기 위해 개발된 플랫폼으로, 1926년 뷰익 마스터 식스에 처음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후 무려 71년 동안 GM의 후륜구동 대형차 뼈대는 이 플랫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끈 50년대의 쉐보레 벨에어, 60년대 갱스터의 상징 임팔라,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의전 차로 쓰였던 올즈모빌 88, 미국 영화에서 뻥뻥 터져나가는 경찰차 쉐보레 카프리스 등이 이 플랫폼을 사용한 대표적인 차량입니다.

이 플랫폼이 적용된 차들을 보고 있자면 각진 마차형 차체부터 90년대 유선형 차체까지 변경 적용되는 모습이 실로 놀라울 따름이죠. 긴 세월 동안 무리 없이 버텨온 노익장이라 표현해도 무방합니다.

사골의 전설, B바디의 질주는 4세대 카프리스가 단종되던 1997년에서야 드디어 끝이 났습니다. 한국 역사로는 순종 황제 말년부터 김영삼 대통령 말기까지니 정말 “장수 만세!”라고 밖에 할 말이 없죠.

더 놀라운 건 후속으로 나온 5세대 카프리스가 홀덴 카프리스 기반이라는 것, 즉 앞서 설명해 드렸던 V 플랫폼을 우려내던 녀석이죠(...) 이쯤 되면 장수도 중독성이 있나 봅니다.

에디터 한마디

흔히 한 번 돈 들여 여러 차례 이득을 보는 상황을 “뽕뽑는다”라고 합니다.오늘 소개해드린 여러 플랫폼은 그야말로 “뽕을 제대로 뽑았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녀석들이었죠.

물론 플랫폼 자체의 품질도 좋아서 오래 사용했겠지만, 20세기에는 오래된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이 내구성 안정과 생산비용 절감 등 여러 이점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장수 사례가 심심치 않게 여러 브랜드에서 등장하곤 했습니다. 폭스바겐에서든, 포르쉐에서든 어느 곳에서나요.

21세기 들어서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소비자의 취향이나 각종 규제사항, 여러 파워트레인의 적용 등에 맞추기 위해 요즘의 플랫폼들은 거의 10년 안팎에서 새 설계를 내놓는 게 요즘 업계의 트렌드입니다.


이제 전처럼 장수하는 플랫폼들은 앞으론 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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