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울을 기억하시나요? “한국에서 박스카의 유행을 이끌어보리라!” 하며 호기롭게 등장했던 선구자 기아 쏘울을요.
안타깝게도, 쏘울은 어딘가 애매한 포지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어정쩡한 판매량을 보이다 작년 1월 국내에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쏘울을 사랑해 마지않던 국가가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미국입니다.
2008년 등장한 쏘울은 2000년대 미국을 풍미한 박스카 열풍의 후발주자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미 몇 년 동안 닛산 큐브, 사이언 xB 등 일본산 박스카들이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터라 아무도 쏘울의 성공을 점쳐볼 수 없었죠.
그러나,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네모반듯 단정하기만 한 일본산 박스카들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습니다. 마초다운 미국인들의 눈에 그런 차들은 영 장난감으로밖에 안 보였던 것이죠. 그런 가운데 등장한 박스 스러우면서도 나름 SUV다운 요소들을 취한 쏘울은 신선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었습니다.
이에 더한 당시 미국 기아지사의 신들린 마케팅 능력이 엄청난 시너지를 불러일으킵니다. 힙스터 스러운 햄스터를 등장시켜 셔플 댄스를 추게 하던 광고를 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그게 쏘울의 미국 광고였습니다.
작고 다부진 모습을 햄스터의 모습과 연결해 재치 있게 표현한 이 광고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적절한 상품성과 마케팅에 힘입은 쏘울은 미국 박스카 시장의 강자가 되었고, 급기야 경쟁차들을 다 단종시켜 버리는 기염을 토합니다.
기아차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 “와, 진짜 많이 샀구나..” 기아차 역대급 실적이 대단한 이유
시간이 흘러 2세대 쏘울이 등장합니다. 한국에서는 2014년 교황 성하의 차량으로 잠시 화제를 끈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진 채 미미한 판매량을 보였지만 2세대 쏘울은 이 시기 미국에서 진정한 전성기를 보냅니다.
1세대 모델이 한국에서 판매량이 부진했던 만큼, 2세대 모델부터는 철저히 미국 입맛에 맞게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노력의 산물인지, 2016년에는 연 판매 15만 대를 달성하면서 북미 기아차의 베스트셀러 모델 자리를 공고히 지켜냅니다.
미국의 못 말리는 쏘울 사랑은 3세대 쏘울에서도 여지없이 이어집니다. 당시 쏘울을 테스트해 본 미국 현지 기사의 반응을 가져와 보면 “부드러운 주행감과 놀라운 실내 공간, 쏘울은 미국 도로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차량이라고 부르는 데 손색없다.”라는 말로 쏘울을 칭찬하는 걸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3세대 들어서 안전성도 꽤 부각되면서 “높은 안전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싼 방법”이라고도 평가받으며 좋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소형 SUV라는 거센 파도를 만났습니다. 거기에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어정쩡한 입지 때문에 3세대 모델 출시 불과 2년만인 2021년 1월에 쏘울은 단종되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이런 물살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미국에도 몰아닥칩니다.
2020년 내놓은 셀토스가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바람에 비슷한 포지션에 자리하던 쏘울의 판매량이 점점 내려가기 시작한 겁니다.
부잣집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죠? 판매량이 내려가는 추세긴 하지만 쏘울은 여전히 북미 기아의 베스트 셀러입니다. 줄어들었을망정 작년에도 7만 5천 대를 판매하며 미국 기아 판매량 5위안에 꼽히고 있죠. 자 이런 효자 차량의 하락세를 그냥 지켜볼 수 있나요? 출시 3년 차인 올해 한국에선 볼 수 없을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했습니다.
기아차가 개발한 역대급 전기차 이야기
새롭게 등장한 쏘울 페이스 리프트, 대부분의 변경 사항은 앞모습에 집중되었습니다. 현대 SUV들처럼 상하로 나뉘어 있던 전면 라이트 부분이 아래쪽을 없애고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라이트가 사라진 자리에 좌우로 DRL을 얇게 뽑아내고 가운데는 커다란 그릴을 적용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딘가 해양 생물의 느낌이 나는 앞모습이 된 것 같네요.
노린 걸까요? 이에 맞춰 새로 등장한 컬러도 써프 블루 색상입니다. 투톤의 클리어 화이트 색상도 같이 추가됐네요.
측면은 새로운 디자인의 17인치/18인치 알로이 휠이 장식해 주고, 후면 범퍼도 전면 범퍼의 변화폭에 맞춰 일부 디자인이 변경되었습니다.
전체적인 외관을 가로로 넓어 보이게 다듬은 반면, 트림과 엔진 선택지는 오히려 더 좁아졌습니다. 1.6L 터보엔진이 이번 페이스 리프트 모델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기존 트림 중 보다 스포티한 이미지를 강조하던 X-Line 트림이 같이 사라졌고요.
좋게 개선된 부분도 있습니다. 기존에 10인치 스크린이 최상 트림에서만 선택할 수 있어 볼멘소리를 듣던 것을 감안했는지 완전 엔트리 등급인 LX 트림을 제외한 전 트림에 10.25인치 스크린을 탑재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차선 유지 보조나 하이빔 보조 등 안전 편의 사양도 기본 적용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추가되긴 했지만, 전반적인 변화는 크지 않은, 평이한 페이스 리프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난 13년간 북미 시장에서 보여준 쏘울의 활약은 정말 눈부신 것이었습니다. 기아차 자체가 미국에서 생소하던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북미 기아차의 든든한 판매량 선발투수였죠. 소형 SUV 바람은 비껴가지 못해 현재는 약간 의기소침해진 판매량을 보이고 있지만, 이번 페이스리프트로 판매량을 씹어 먹던 그 시절의 폼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