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가 전기차로 1,000km를 주행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얼마 전 공개했던 전기차 컨셉카, ‘비전 EQXX’가 이번 내용의 주인공인데, 사실 처음엔 안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나가서 구른게 아니라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였거든요.
“에이, 아직 전기차는 안돼~” 뭐 이런 반응이 많았었는데지금은 “아니, 이게 되네?”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실제로 보여줬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차는 어떤 특징이 있길래 무시무시한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걸까요?.
먼저 이 차로 운전한 코스를 알아볼게요. 우선 독일 진델핑겐에서 출발한 다음 스위스 취리히를 찍고 이탈리아 밀라노를 거쳐서 프랑스 마르세유 근처에 있는 항구까지 가는 엄청나게 긴 코스였습니다.
지도로 보면 위에서 아래로 쭉~ 내려온 건데 총 11시간 반 정도 걸렸고 목적지에 도착하고서도 배터리 잔량이 15%정도 남았다고 하죠. 거리로 보면 한 140km 정도? 그리고 이번 챌린지가 좀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주행 조건이 안 좋았는데도 1,000km 이상을 달렸기 때문입니다.
알프스 산맥을 지날 땐 3도까지 떨어지는 추운 날씨였고 비까지 내렸습니다. 전기차 배터리는 추운날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닥 좋은 환경은 아닌거죠. 또, 프랑스 근처에선 맞바람까지 불었다고 합니다. 특히 고속도로를 달릴 땐 시속 140km까지 찍었고 도착하고 보니, 평균 속도는 시속 87km 정도로 절대 느리지 않았어요.
자 그렇다면, EQXX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걸까요? EQXX는 벤츠의 최신 기술이 들어간 종합 선물세트입니다.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낮은 공기저항, 가벼운 차체, 배터리 기술이 있겠네요.
이 차의 공기저항은 엄청 낮아요. 항력계수가 0.17Cd인데, 양산차중 최저 수준이라고 소문난 포르쉐 타이칸이나 테슬라 모델S 보다도 훨씬 낮아요. 이 두 차는 대충 0.2Cd 정도 되죠.
미국자동차기술학회에서 테슬라 모델 S의 프로토타입과 최종 양산모델을 가지고 실험한 자료를 보면, 항력계수가 0.08 정도만 낮아져도 80km 정도를 더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0.03 정도면 몇 십km를 더 갈 수 있는거죠.
이 차의 디자인은 공기저항을 줄이는데 몰빵한 모습입니다. 물방울 처럼 날렵하게 잘 빠졌고 보닛을 보면 구멍이 뚫려있죠? 이걸로도 공기저항을 좀 더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시속 60km부터 작동하는 액티브 리어 디퓨저가 달려있죠.
그리고 타이어는 특수 제작해서 회전 저항을 4.7까지 내렸습니다. 회전 저항이란, 타이어가 구르면서 생긴 마찰열 발생로 손실되는 에너지를 말해요. 유럽에서 일반 타이어 중 회전 저항이 낮은게 6.5정도고 EQS에는 5.9짜리가 들어갑니다.
근데 EQXX엔 이거보다 더 낮은게 들어간거죠. 참고로 회전 저항이 10% 내려가면 연비는 1.74% 올라가기 때문에 타이어 역시 중요하죠.
이 차는 전기차 치고 진짜 가벼워요 5미터 가까이 되는 찬데, 1,755kg 밖에 안됩니다. 보통 이정도 크기면, 배터리 무게 때문에 2톤은 가볍게 넘어가거든요. 일반 전기차와 비교하면 최소 3백 kg은 줄였다고 봐도 돼요.
벤츠는 경량화 때문에 AMG F1 팀이랑 머리를 싸맸다고 합니다. 차체엔 F1머신에 사용되는 탄소 섬유랑 알루미늄을 썼고, 가장 무거운 부분인 배터리에도 손을 댔어요. 이건 뒤에서 자세히 다뤄볼게요.
그리고 정확히 공개되진 않았지만 회생제동량이 높아서 가벼운 브레이크를 넣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벤츠는 공기저항만 신경쓴게 아닙니다. 차 지붕에는 태양광 전지를 달아서 25km 정도를 더 주행할 수 있게 했고 모터는 배터리에서 발생한 에너지의 95%를 바퀴로 전달 할 만큼 효율이 높습니다. 특히 동력 전달 효율을 높이려고 모터와 감속기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44%나 줄였다고 하죠. 일반 내연기관차는 아무리 높아봐야 30% 수준인걸 생각하면 정말 높은 거예요.
자, 여기까지만 봐도 이 차가 참 대단하단 걸 알 수 있는데 배터리도 평범하지 않아요. 흑연 음극재 대신 실리콘 음극재를 사용했고, 배터리 팩 구조는 셀-모듈-팩 방식 대신에 셀투팩 형태로 바꿨죠. 그럼 이게 어떻게 좋은걸까요?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음극재부터 볼게요. 배터리에서 음극재는 리튬이온을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배터리 충전속도와 수명과 관련이 있어요. 거의 30년 동안 저렴하고 안정적인 흑연을 많이 사용했는데, 최근들어 실리콘 음극재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배터리 충전속도와 용량을 더 끌어올릴 수 있거든요. 이론상 흑연 계열 음극재는 1g 당 용량 한계가 370 밀리암페어시 내외이지만, 실리콘으로 바꾸면 1g당 용량을 1,500 밀리암페어시로 확 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리콘 음극재는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는 스웰링 현상이랑 짧은 배터리 수명이 단점이긴한데 요즘은 해결 됐는지, 포르쉐 타이칸에 실리콘 음극재가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지금 나오는 실리콘 음극재는 100%가 아닙니다 이거만 넣으면 만들기가 어려워서 흑연에 실리콘을 조금 첨가하는 수준인데 삼성SDI나 LG에너지솔루션 같이 잘 만드는 곳이 5% 수준이죠.
작년 말부턴 7% 실리콘 음극재를 개발중인데, 실리콘 함유량이 높아질 수록 배터리 성능은 계속 좋아질 겁니다.
다음은 셀투팩입니다. 이게 뭐냐면, 배터리 팩을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보면돼요. 원래 전기차 배터리는 셀 - 모듈 - 팩 순서로 조립되거든요?
여기서 셀은 그냥 낱개로 있는 배터리입니다. 기본단위죠. 그리고 모듈은 셀을 여러개 넣어둔 보호막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팩은 이 모듈을 여러개 모아 놓고 제어 장치나 냉각 기능을 추가해서 많들어 놓은걸 말하죠. 이렇게 셀과 팩 사이에 모듈이 끼면 배터리가 안전하겠죠? 근데 무거워져요.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요.
셀투팩은 말 그대로 셀을 모아서 바로 배터리 팩을 만든겁니다. 모듈이 빠지기 때문에 당연히 공간이 생기겠죠? 그럼 그만큼 배터리를 더 넣을 수 있게 돼요. 이 기술은 중국의 CATL이라는 배터리 제조사에서 밀고 있는 기술인데 벤츠에서 왜 사용하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작년 부터 벤츠와 CATL이 손을 잡고 셀투팩 기술을 공동개발하고 있었어요.
아마 테스트 해볼겸 넣어본거 같은데, CATL은 이 기술로 주행거리를 18% 정도 늘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EQXX에는 최신 기술이 곳곳에 들어가 있습니다. 독일 브랜드들이 전기차 시대로 넘어오면서 밀린다는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100년 넘게 차를 만들어오다보니 기본적으로 갖고있는 기술력을 절대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차의 양산모델이 나온다면 제한사항이 많아서 주행거리 1천 km는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멀리 가는 전기차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