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도 엄마는 처음이라
결국 나는 돌발성 난청 판정을 받았다! 오히려 돌발성 난청이 맞다고 하니 마음이 시원했다. 다행인 건 경증이라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되고 일주일 약을 먹으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출산 후에 돌발성 난청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왠지 모를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다. 임신했을 때 겪었던 이관개방증*이나 두통 등은 출산과 동시에 사라졌기 때문에 왠지 임신과 출산 때문에 겪는 증상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하니 내가 이상하게 혼자 특출 나게 아픈 것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이관이 때때로 지속적으로 열리게 되는 신체장애로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느껴지는 자성강청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의사는 내게 약을 먹는 동안은 모유수유를 할 수 없고 약을 끊고 일주일 동안도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최소 2주를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모유수유를 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왠지 모를 죄책감과 또 왠지 모를 설렘 같은 것이 같이 밀려왔다. 죄책감은 아마도 아기의 밥통이었던 내가 밥을 준비할 수 없다니 당연히 드는 미션 임파서블의 죄책감일 것이고, 설렘은 이제 수유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해방감일 것이었다.
용용이는 육아 참여도가 아주 높은 남편인데 내가 모유수유를 시작하고 용용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 신생아의 육아는 거의 잠 아니면 수유다. 수유를 하고 나면 잠만 자는데 지금보다 더 신생아 때에는 먹다가도 잠이 들고 트림을 시키다가도 잠이 드니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분유수유를 해야 하니 용용이가 꼭꼭이에게 밥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돌발성 난청이라고 하니 내 몸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했거니와 분유를 타는 것만큼은 본인이 해야 한다고 느꼈던 것인지 용용이는 그날 저녁부터 정말 열심히 꼭꼭이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켰다. 나는 50여 일 만에 수유천국? 수유지옥? 수유감옥? 같은 것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주변 어른들은 모유수유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성애가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처럼 나에게 얘기했었다(그게 강요인가?). 그래서 왠지 모르게 모유수유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반발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모유수유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택하기도 했다. 그런데 돌발성 난청으로 피치 못하게 모유수유를 중단하게 되면서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 봤을 때 모유수유는 모성애와는 아주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지금 내가 돌발성 난청으로 모유수유를 중단하게 되었다고 해서 모성애가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분유수유를 한다고 해서 아이를 잘 키워내고 싶은 맘, 아이를 예뻐하는 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분유수유를 하면서 먹은 양과 시간, 아이가 크는 속도 등을 확실하게 체크하고 조금 더 철저해지면 철저해졌지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에 비해 모성애가 덜해서 아이를 못 키우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모성애라는 단어가 어쩌면 엄마의 희생을 강요하는 족쇄 같은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성애라는 단어에는 쉽게 덤벼들지 못한다. 내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실제로 "모성애가 있으면 다 이겨낼 수 있어." "힘들 때 비로소 모성애가 나오는 거야" 등의 말을 들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아프다 혹은 힘들다 등의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말을 해버리면 모성애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서다.
나는 엄마이고,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실제로 모성애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 같은 것이 당연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거나 내 행동의 척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모성애 때문에 힘들어도 아파도 참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옆에 생긴 어린 동반자로서 힘들고 아프면 서로 도와가면서, 위로받아 가면서, 치유해 가면서 키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