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에서 외국 승무원의 들리지 않는 아프리카의 본토 영어 발음과 함께 사람들이 달칵 달칵- 안전벨트 푸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도착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사실 와닿지는 않았다.
우간다에 도착했다.
나는 비행기가 착륙하면 바로 내가 이곳 우간다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2월 중순, 칼바람이 부는 한국과는 달리 햇볕이 쨍히 뜨거운 날씨, 주변을 메우고 있는 피부 까만 사람들, 느긋하다는 성품까지 한국과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서 분주히 가방을 내리고 통로를 가득 채웠다. 뭐야, 이건 성질 급한 한국인들만 이러는 거 아니었어?
그 이유는 나가서 깨달았지만 도저히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는 느려터진 입국 절차 때문이었는데.. 그건 그냥 생각만 해도 끔찍하니 넘기도록 하자..
내가 이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생각보다 없다.
개발협력이라는 분야를 택하고 인턴으로 몇 개월이 지나갈 무렵 팀장님이 문득 그런 제안을 하셨다.
"간사님, 혹시 파견 나가 볼 생각 없어요?"
작년 말의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 고민이 많았던 시점이라 그 말이 상당히 두근두근하게 들렸더랬다. 며칠 생각해 본다고 했지만 내 마음속의 답은 이미 오케이였고, 가족과 이야기를 해보고 더 확신이 생겨 며칠 뒤 가보고 싶다고 답을 드렸다.
그 후로부터 시간은 빛의 속도로 흘러 1월을 사업 보고로 바쁘게 보내고 나니 어느새 2월이 되어버렸다.
출국이 무려 2월 19일이었고, 해외 파견 경험이 없던 나는 몇몇 물건을 시켜놓는 것을 제외하고는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을 뿐이었기에 비슷한 시기에 파견을 나가는 과장님께 따끔한 소리를 듣고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이 이리저리 날아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18일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간다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아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빙글빙글 돌아가는지..
다시 덜쿠덩, 덜쿠덩, 차를 타고 6시간을 서쪽으로 이동했다.
우리 사업지는 서부지역, 포트포탈(줄여서 애칭은 포포)이라는 우간다 내에서는 나름의 크면서도 한적한 도시였기 때문에 공항이나 수도를 가려면 이렇게 고통의 시간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앞으로도 계속된다.
내리자마자 시작된 정말 쉽지 않은 여정
어쨌든간 지금은 그로부터 7개월 하고 조금 더 지났고, 나는 계속해서 우간다의 삶에 적응해 가는 중이다.
차가 고꾸라져 죽을 뻔한 사고에 처하기도 하고, 머리를 땋아 아프리칸 스타일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인력을 받아보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과 만남, 헤어짐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간다의 삶도 한국과 동일한 것은,
성질 급한 깐깐한 사람부터 느긋하고 능글맞게 구는 사람까지 다 함께 공존하는 오피스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 우간다 서부 지역을 더 지속가능한, 사람이 살아나는 공간으로 만드는지 고민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이야기는,
평범히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NGO에서 파견을 나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우간다에서 살아내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