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어두컴컴한 1평의 공간 속 보이는 것은 바닥에 뚫린 네모난 구멍.
복잡한 생각이 오가는 와중, PM(사업담당자)님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워크숍 차 다른 NGO의 사업현장을 방문하는 중이었다.
우리 서부지역에서는 약 10시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하는 곳이었다.
전날 하루 묵고 다음 날 다시 이동해서 마침내 가게 된 곳은 타 국가에서 내전 및 여타 상황으로 인해 옮겨온 난민들이 지내던 정착촌.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우리는 해당 사업을 운영하시는 PM님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다른 사업기관은 많지만 한국인은 존재하지 않는 그 정착촌에서, PM님은 일주일 중 며칠은 보낸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전날 묵었던, PM님이 실제 사시는 지역에도 한국인은 없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보다는 조금 더워도, 다른 곳과 똑같이 신나게 염소가 뛰어다니는 공간이었다.
사업설명을 듣기 전, 정착촌 입구 국제기구와 NGO들의 단층 사무실이 모여있는 컴파운드에 들어서자 PM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화장실은 저 왼쪽으로 지나가시면 나옵니다. 깨끗하고 괜찮아요."
정말 다행이었다.
우간다에서는, 갈 수 있을 때 좋은 화장실이 있다면 최대한 들렀다 가는 것이 좋다.
특히 사업장으로 들어갈 수록 화장실은 열악해지고 나는 나름 화장실을 자주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괜찮은 화장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괜찮은 화장실'의 정의란 무엇일까.
보통 한국에 있을 때 생각하는 괜찮은 화장실이란 기본적으로 냄새가 나지 않는 공간일 것이다. 아무 것도 묻어있지 않은 변기와 깔끔하게 청소된 세면대, 공공장소에서도 운이 좋으면 발견되는 뽀얀 휴지. 그렇지만 변기에 묻어있을 세균에 안심할 순 없으니, 휴지에 묻혀 쓰는 소독제가 벽면에 붙어있다면 금상첨화다. 이것까지 있다면 '고마운 화장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화장실의 모습은 좋은 호텔에나 가야 찾아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나의 중학생 시절, 몇몇 친구들은 새로 지어진 학교에 진학했지만, 뺑뺑이에서 떨어져 2지망으로 가게 된 나는 지어진지 조금된, 거리가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화장실은 반으로 나뉘어져 왼쪽 칸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양변기, 오른쪽은 쪼그려 사용하는 화변기가 있었다. 물론 양변기가 훨씬 낫다. 아이들이 실수를 해서(?) 옆에 튄 것들에 냄새가 나는 경우도 없고. 하지만 가끔은 엉덩이가 직접 닿는 양변기보다 화변기가 더 위생적이지 않을까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 여기, '괜찮은 화장실'이라고 이야기하셨던 무언가로 나는 향하고 있었다.
화장실 앞에선 두 마리의 형제 염소가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기분좋게 쉬고 있는 중이었다.
화장실의 문을 열고 나서 마주한 변기는 약 5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 형태였다. 글쎄 우리나라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던 50년 전에도 과연 이런 형태가 많이 있었을까.
그곳에 있던 것은 검정고무신에서나 보았을 법한 푸세식 변기였다.
약 1x1(m) 정도의 칸, 그리고 전구도 없어 문을 닫으면 일부 천장이나 문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빛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어둠의 상태. 바닥은 시멘트로 덮인 곳에 약 20x45(cm) 정도의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을 뿐이었다.
그래, 괜찮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런 푸세식 화장실 치고 이렇게 깔끔하게 관리되는 곳은 별로 없었다. 구석에 거미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옆에 튄 것들이 있는 지저분한 상태도 아니었다. 정말로 시멘트 바닥에 구멍. 물론 문을 걸어 잠그는 구멍이 안 맞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애교였다.
휴지도 있겠다 구멍도 있겠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라고 생각했으나,
내 마음을 갑갑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구멍에 거주하고 있는 날파리 떼들.
어쩌면,, 큰 파리나 나방이 없는 건 '괜찮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험 삼아 발을 흔들어 보았더니 구멍 입구에 붙어있던 수십마리의 날파리 떼들이 당황스러움을 피하고자 공중으로 날아올라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다시 구멍에 붙으며 혼란은 원하지 않는다는 듯,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하"
밖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화장실에서 웃을 일이 대체 뭐가 있는지, 요즘같은 웃을 일 없는 세상에서 재밌다니 참 좋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으나(?), 나의 웃음은 체념과 당황이 반쯤 섞인 웃음이었다.
정말 싫기도 하지만, 왠지 정말 괜찮은 것도 같아 무엇이라 생각해야할지 갈등이 온 것이다.
'그래, 저 파리떼만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이 화장실은 깔끔하고 완벽하다.'
'그렇지만,, 내가 옷을 내리고 쪼그려 앉는 순간에도 저 파리들은 난리를 칠 것인데..'
'그냥 파리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너무 작아서 살에 닿아도 아무런 느낌이 안 날 것이다..'
'내 옷과 속옷에 들어가면 어떡해야 할까..'
'아냐.. 저 녀석들도 나랑은 엮이고 싶지 않아 피해다닐 것이다..'
그렇게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나의 선택은.. 눈을 질끈 감는 것이었다.
눈을 감으면 파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어쨌든 화장실에 가야하며 난민촌에 들어가면 더 열악한 화장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간다 살이에는 분명 적응해야하는 부분도 있지 않은가, 피할 수 없다면 적응하는 수 밖에!!
그렇게 나는 눈을 감았고 날파리는 보이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살에 닿았는지 안 닿았는지 느낌도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는 수십가지의 생각이 동시에 빠르게 지나가며 복잡하게 얽혀 마치 날파리 떼가 춤을 추듯 혼란의 시대가 찾아왔다.
결국 나는 그 1x1(m)의 공간에서 잠기지 않는 문을 최대한 잘 닫아놓고(여기는 '잠기지 않는다'='저절로 열린다'이다) 원하지 않는 짧은 시간의 동거를 마치고 조심스럽게 나왔다.
햇살이 참 쨍하고 찝찝했다. 혼란의 마음은 가시지 않았으나 곧 사업 설명을 들어야하니 이 경험은 기억 저편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얼른 손을 씻고 들어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옆의 물통 수도꼭지를 들었다.
'끼릭'
잠잠..
...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사업하기를 꺼리지 않으시는 모든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분들께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