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건 다 괜찮으니까 몸만 건강히 돌아와" To. 친구들, 내 입버릇
우간다에 도착하고 한 달이 채 되기 전, 나에게는 한 가지 결심이 있었다.
그건 바로, 운전연습을 열심히 하는 것.
사실 초등학생 때부터 무서운 이야기나 공포 영상들을 섭렵해온 나는 언젠가부터 두려움이 별로 없어졌다.
갑자기 화면에서 귀신이 튀어나와도 화들짝 놀라는 것 없이 덤덤, 공포테마 방탈출도 혼자 독방에 들어갈 정도로 용기있는 여자였다(?).
그러던 내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실적인 공포였다.
운전은 그 현실적인 공포에 속해있었다. 이건 내가 잘못하면 나 혼자 죽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파괴하거나 심할 경우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운전 면허는 대략 23살 쯤 땄다. 그렇지만 운전을 해볼 기회는 없었다.
이야기했듯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단 것도 무서웠고, 뭐 약간 비상등을 미안하다는 표시로 껐다 키기도 하지 않나, 나는 그런 내가 모르는 암묵적인 도로위의 규칙이 있어 알아보지 못할 경우 민폐를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좀 있었다.
동시에 렌트를 해서 근처를 조금 돌아다니는 게 아니면 굳이 면허증을 꺼낼 일도 없었기에 나는 이미 장롱면허인지 몇 년 차였다. 사실 연수도 받아봤으나 그마저도 후에 운전을 안했기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하지만 우간다에 오면서 국제운전면허증은 가져오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선임 간사님께 듣게 되었고, 어차피 해야 늘게 되는 운전, 하게 되면 해보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걸어다니거나 대중교통이 편한 곳이 없고 우간다도 차로 이동해야하는데, 만약 운전을 하지 못하는 간사님이 오시게 되면 그야말로 숙소에 갇히게 되는 것이 아니겠나.
처음에는 혼자 5분 거리의 호텔에 가서 밥을 먹고 오기로 했다.
앉고 타서 정석대로 차 시트도 움직이고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도 움직였으나 혹시라도 빼놓은 게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한참을 두리번 두리번 살피다가 '음 그래 이정도면 충분해.'하고 핸들 뒤 손잡이들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깜빡이를 켰다 껐다 해보았다.
곧 시동을 걸고 차를 앞으로 움직였다.
어떻게 그렇게 신경쓸 게 많아 보이는지 왼쪽 사이드 미러, 오른쪽 사이드 미러, 백미러, 앞을 번갈아가면서 눈을 쉴새 없이 움직였다. 완전 느린 주행이었다.
호텔에 도착하고서는 내 스스로에게 저녁식사로 보상을 해주었다.
내 기억으론 처음으로 혼자 밖에 나갔던 것이었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조용한 식당에 여유로운 분위기. 때마침 본부에 있었을 때 친했던 간사님과 전화를 하게 되어서, 운전이 얼마나 떨렸는지, 그렇지만 오게되어서 얼마나 기분이 뿌듯한지 이야기 꽃을 피웠더랬다.
그렇게 한번 하고 나니,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그 다음엔 조금 더 먼 식당에 가보고, 조금 더 멀리 돌아 오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함께 일할 여자 간사님이 뽑히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연락해보니 운전 면허를 현재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시는 것 아닌가.
그때 나는 주말마다 차를 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예쁜 곳을 보러다녀야겠다고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기분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지, 운전 연습이 더 재밌어지는 소소한 기쁨 중 하나였다.
1년 동안 함께 할 분을 기다리고 궁금해하던 찰나, 간사님을 맞이하는 기분은 기대반 설렘반이었다.
특히 '그 날'은 내 스스로에 뿌듯한 날이었다.
처음으로 10분 거리의 타운으로 나가 식재료를 무사히 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냥 들떴던 탓인지 콜라나 과자 등 꼭 필요한 것도 아닌 걸 그냥 신나서 무작정 사버렸다는 것을 차 시동 걸 때쯤 깨닫게 되었다.
우간다라 해도 수입품의 가격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화로 하면 하루에 3만원정도이니 사실 그렇게 큰 돈은 아닐 수 있겠으나 운전 연습한다고 요새 종종 나와서 뭐 먹거나 사서 들어가는 것이 많았던 터라 약간 기분이 찝찝했다.
아.. 나는 그런 기분이 찝찝한 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알아서 집에 잘 들어가야했다.
사실 그랬다. 조수석에 물건들을 놓고 이제 집에 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돌아가면서 집 앞 호텔이 보였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내 안의 두 마음이 충돌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아니야. 그래도 오늘 이미 돈을 많이 썼는걸.'
'먹어봤자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 좀 넘잖아?'
'그럼 오늘 쓴 것만 4-5만원이야!!'
'그렇지만 오늘 같은 기분은 별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어떤 게 좋을지 끙끙대며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호텔 입구는 가까워졌다.
1초마다 생각이 바뀌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결국은 호텔 쪽으로 차를 몰아갔다.
그래, 내 지갑한텐 미안했다.
그치만 그 당시에 나는 지금처럼 요리에 관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이것저것 할 수 있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볶음밥이었기에 오늘도 먹기는 좀 내키지 않았고, 저녁준비라는 귀찮은 일을 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기서는 음식을 시키면 1시간은 기본으로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 호텔 뿐이 아니라 포트포탈의 모든 식당이 그랬다.
하지만 시간 낭비도 싫고 주차도 그냥 귀찮으니 주차장 바로 앞쪽에 들어가자마자 하기로 했다.
이게 바로 '방심'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응당 초보자라면 멀리 해야 할 그것.
나는 주차를 그냥 빨리 하자 싶었고 미래에 있을 일을 예측하지 못했다.
차 운전대를 틀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때였다.
붕-
밟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브레이크 대신 악셀을 밟았다는 사실을.
주차장에 악셀을 밟으며 들어오다 바로 옆으로 꺾어 그곳에 있던 주차공간에 대고자 했는데
그 상황에 브레이크로 발을 바꾼 게 아니라 바로 밟아버린 것이다.
차는 곧바로 두두둑- 소리를 내며 허리춤까지 오는 덤불들을 뚫고 나아갔다.
나는 아차하고 재빨리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어느새 허공이 보였고 낭떠러지를 넘어선 앞 바퀴와 엔진의 무게로 차는 앞으로 기울었다.
차는 바로 멈추었지만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흙바닥으로 험하게 뭉게며 낭떠러지에 걸리게 되었다.
차는 대략 20도 정도 기울어져있었다.
악셀을 잘못 밟고 차가 덤불을 뚫고 기울어지기 까지 1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깨달았다. 아, 철창이 아닌 덤불은 그냥 장식용이구나. 차를 막아주는 데는 단 0.1%의 도움도 되지 않는구나.
물론 다행히 높지 않은 낭떠러지였으나 이미 정신을 차렸을 때는 1.3m는 족히 넘어보이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아래는 직원용인지 호텔에서 지은 듯한 작은 집이 지어져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쓰레기를 스스로 처리하는 방식인지 내 차가 향하는 방향 아래에는 소각로에서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곧장 현지인들이 모여 내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 생각이 안 들면서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