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우간다에서 사고내기(下)

by 위즈

차가 기울었다.


약 100가지의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여기서 나가야 하나?, 차를 뒤로 빼볼까? 가만있는 게 낫나? PM님한테 전화를 걸어야 하나? 언제? 지금은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이 도와주겠지? 와 여기서 사고 친 동양인 조그만 여자애는 나 밖에 없을 텐데 이 사람들 나 사고 친 애로 영원히 기억하면 어떡하나.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음.. 이 사람들이 나보다 차를 더 잘 아니까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하고 체념할 때까지 사람들은 계속 모여들었다.


일단 창문을 살짝 내렸다.

상당히 당황한 상황이었으므로 일단 호텔 직원 같은 사람들한테 얼떨떨한 미소를 머금고 사과부터 했다.

“정말 미안해요. 제가 브레이크를 밟으려다가 악셀을 밟아서.. 정말 미안합니다..”


호텔 직원들은 괜찮다고 해줬지만 사실 호텔의 매니저는 아니니까 불쌍하게 떨어지기 직전 절벽에 걸려있는 동양인 여자애에겐 괜찮다고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1.4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절벽 바로 앞에는 집이 한 채 있었다.

직원용 집처럼 보이는 그 집 앞에는 소각로가 무언가를 불태우고 있었고 웬 소란이지 싶었던 집 안에서 방금 샤워를 마친 것 같은 현지인이 수건 한 장만 걸친 채 문을 열고 나와 나랑 눈을 마주쳤다.



뭐지 이건 싶은 떨떠름한 표정.


문을 열고 나왔더니 두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 앞에 떨어질 듯 말듯한 차가 서있고 안에 있던 동양인 여자애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불쌍한 표정으로 암 쏘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나는 그런 상황이 처음이었기에 조심스레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나이 있어 보이는 중년 삐쩍 마른 아저씨에게 물었다.


“저 차 이거 뒤로 빼볼까요..?”


아저씨는 기가 찬 목소리로 랩을 하며 설명했다.

아니 그냥 가만히 있어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어느 것도 건드리지 말고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등등 무언가 많이 이야기를 했지만 온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나는 아프리카 억양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해 그 다급한 뉘앙스, 하지 말라는 손짓,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정도만 알아듣고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오케이..”


사람들은 어느새 내 차 뒤에 단단한 사슬 줄과 사파리 관광 차량처럼 보이는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튼튼한 랜드크루저를 연결했다.


여행사에서 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 주차장 안에 랜드크루저와 (아마 사파리에서 다른 차량이 빠졌을 때 구해주기 위한) 사슬 줄이 있었던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차가 시동을 걸고 있을 때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부장님..”


아니 이런.. 여기 호텔 사람들이 내 차 앞에 붙어있는 우리 회사 스티커를 보고 내가 어디에서 온 건지 파악해서 우리 지부장님에게 직통으로 연락을 건 게 틀림없었다.


이걸 벌써 전화를 한다고? 아니 음식은 한 시간이 기본이면서 이럴 때만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다고..?


“여보세요..?”

“아 간사님, 잘 지내셨죠? 퇴근하셨나요?”

“아 네 퇴근하긴 했어요..”

“그렇군요. 우간다에 오고 나서 연락을 못 줬던 것 같아서 잘 지내고 있으신지 물어보려고 연락했어요~”


그렇다. 나의 오해였다.


“지부장님.. 혹시 제가 지금 급하게 해결해야 할 게 있어서 혹시 이따가 전화드려도 될까요?”

라고 나는 거의 정신이 없어 나오는 실소의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전화를 끊고 복잡한 듯 체념한 듯 있었더니 한번 쿠당 하고 오프로드 차량이 끌다 멈춰 섰다. 사이드브레이크 때문인가 싶어 풀고 기다리니 내 차 옆을 보며 사람들이 무엇이라 현지언어로 이야기하고 옆으로 달라붙어 차를 밀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암 쏘 쏘리.. 땡큐.. 를 계속해서 외치는 것 밖에 없었다.

하나 둘 셋(으로 추정되는 말)을 외치고 오른쪽에서는 밀면서 뒤에서는 당기니 그제야 차가 뒤로 끌려 올라갔다.


일단 나가서 차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차 문을 열고 나가 일단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계속 꾸벅거리고 인사하면서

“정말 감사해요.. 여러분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했다.


차를 보니 앞 범퍼가 완전히 나가있었다.

아마 몇몇 사람들이 정비소에 가야 되지 않냐고 물었던 것 같지만 일단 나는 매니저에게 먼저 전화를 해보겠다고 이야기하고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따르릉-


“네 간사님, 무슨 일이세요?”

“PM님.. 저 사고를 쳤습니다..”


짧은 대화 뒤에 PM님은 금방 오겠다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몇몇 사람들은 가고 몇몇 사람들은 내 차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중년의 마른 아저씨는 내게 와서 왜 전면 주차가 아닌 후면 주차를 해야 하는지 열변을 토하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제가 잘 몰라서.. 감사합니다.. 를 반복했지만 내 귀에 들어오는 건 크게 없었다.


정신이 없이 사람들에게 곧 매니저가 올 것이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PM님이 다른 사무실 차량을 끌고 오셨다.


옆에는 우리 현지 직원도 함께였다. 나에게 유감을 표하면서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간사님, 일단 이 차를 끌고 먼저 돌아가세요. 저는 정비소로 갈 테니까.”

다행히 차는 움직였고 그렇게 앞 범퍼가 땅에 질질 끌리는 채로 PM님은 정비소로 향했다.


방금 사고를 친 사람에게 다른 차량을 맡길 수 있으시다는 담대함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해 도착하는 순간까지 정신없이 오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우리 현지직원은 괜찮은지, 아직까지 저녁을 먹지 못한 것인지 염려해 주었다.

나는 괜찮다며 집에 조심히 들어갔고 이후 정비소에 다녀온 PM으로부터 3만 실링(약 만 천 원) 정도가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종종 호텔에 방문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사고 냈던 장소를 다시 확인해 본다.

그 자리만 덤불이 무너져 작은 집이 훤히 보인다.

조경을 깔끔하게 관리하기도 하고, 이전에 우리 다른 직원한테는 잔디를 밟거나 꽃을 꺾는 것만으로도 보수 비용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의외로 나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변명할 수 없이 큰 도움을 이들에게 받았다.

넘어가기 일보 직전에, 조금이라도 브레이크를 늦게 밟아 차가 소각로에 불타기라도 했다면 인명사고로 번졌을 것을 3만 실링이라는 적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행운까지 얻었다.


사람은 그렇게 한번 실수를 해야 성장하는 것인지 그 후로부턴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후에도 만만치 않게 큰일이 한번 있었으나 다행히도 그 후로부터는 차에 작은 생채기를 몇 번 내는 것 외엔 몇 개월째 문제없이 잘 차를 몰고 있다.


어쩌면 한국이 아닌 우간다에서 차를 몰기 시작해서 다행인 것 같다.

한국에서 한번 작은 생채기를 냈다고 몇 십만 원씩 배상했다면, 살짝 긁히는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묻지도 않고 길을 가는 문화가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그렇게 차 몰기를 무서워했던 내가 운전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때 운전 잘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꿈이었던 나는 또다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