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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병

진정한 공감을 배우다

by 산들

인간심리에 대한 책도 보고 마음공부 좀 했다고 사람마음을 알 수 있다고 착각했다. 마음은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도 내 업식대로 추측하고 판단하고 단정 지으며 안다 병에 걸린 것도 몰랐다.


25년 동안 키웠기 때문에 자식의 마음을 다 안다고 착각했고 30년 가까이 살았다고 남편 마음을 다 안다고 자만했다. 가족의 마음을 내식대로 판단하고 추측하면서 오해하고 번뇌를 만들었고 정작 가족이 내 마음을 오해하면 답답하고 서운해했다. 내 마음이 정확히 어떤지도 잘 모르면서 상대마음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모든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관계형성에 힘들어하는 딸을 보며 딸 입장에서는 그렇겠구나 공감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것은 욕심이라며 조언하기에 바빴다. 내가 성찰하고 알게 된 것들을 남편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잣대를 들이대고 조언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고 이해하는 것임을 이렇게 늦은 나이에 알게 되어 가족에게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해결이 되지 않아도 위로가 되듯이 상대마음이 그렇구나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돼서 참 감사하다.


"엄마는 내 마음을 절대 이해하지 못해. 엄마는 너무 이성적이야. 내가 원하는 건 공감이지 조언이 아니야. 엄마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딸이 무수히 나에게 했던 말인데 그때는 딸이 너무 감성적이고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냥 무심코 넘겨버렸던 말들이다. 수행을 하면서 딸의 말들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아프게 다가왔다. 내가 교만하고 자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목에 박힌 가시를 빼려고만 했다. 그러나 그 가시를 그대로 두고 지켜보았다. 그렇구나 내가 그렇구나 가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가시가 내 몸속에서 스르르 녹아내렸다.


딸이 나를 정신 차리게 해 주었다. 내가 안다는 자만심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도 딸 덕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좋은 말들은 나를 위한 수행의 방편으로 삼으면 되고 그냥 가족의 마음이 그렇구나 알아주면 된다.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겠다.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상대가 어떤 마음인지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다. 내가 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내 눈에는 이미 색안경이 칠해진 상태이다. 싫으면 싫어하는구나 좋아하면 좋아하는구나 마치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듯 상대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알아주는 것이 진정한 공감임을 배운다. 공감하게 되니 이해가 저절로 되고 이해하게 되니 단점으로 보이던 것들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 가족은 내 수행을 도와주는 스승임을 가슴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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