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72일 차-모두의 노래

by 안나

2022년 5월 28일 토요일

격리 72일 차


오늘 아침은 핵산 검사 없으니 늦잠 자도 된다고 단체방에 올라왔어요.

잠도 핵산 검사 시간에 맞춰서 자야 해요

어제 핵검 안 받은 사람들은 오늘 공안국에서 찾아온다고 하네요

기승전 핵검이에요


9시에 중국어 온라인 수업

중국어쌤은 제가 북경에 있을 때 일타강사이셨어요

설명 잘하시고 잘 가르치셨던 분인데 이제 온라인으로만 만나요

쌤,우리가 토요일 아침 9시마다 만나서 신문 펴놓고 수업하던 그 시절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겠죠


온라인 수업 후 제 모닝 루틴

커피

오늘은 하리오 드립으로 내렸어요


이번 격리 생활에서

의의로 유용했던 것이 생선용 칼이에요

애가 생긴 게 흉측하잖아요

주로 영화에서 범죄 도구로 쓰이는 애라서 살까 말까 무지 고민했었는데요

2020년도 북경에서 살 때

허마에서 연어회를 자주 시켜 먹었어요

배달 올 때 연어회가 제자리 구르기 해서 뒤집히고 엉클어진 모습으로

오는 게 싫어서 제가 썰어서 먹겠다는 야심으로 생선용 칼을 시켰어요


며칠 지나도 배송을 안 하길래 판매자에게 연락했더니

지금 북경 양회 기간이잖아 하네요

양회(3월에 북경에서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 북경으로는 알코올 등의 인화성 물질과 칼이나 가위 같은 도검류가 배달이 안되어요

양회 끝나고 보내준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드디어 칼을 받았습니다

생긴 게 험악했지만 그래도 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다르지 하고 뽁뽁이로 잘 싸주었습니다.


이제 연어 좀 시켜보려고 했더니 2020년 5월에 신파디 시장 연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면서 북경에 있는 모든 연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저는 이 칼을 왜 샀을까요 …

연어를 시켜서 직접 슬라이스 해서 먹겠다는 저의 야심 찬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되었어요

중국이 보여준 강직성은 사실 이때만 해도 애교에 불과했죠


이 칼을 2022년 봄에 상해에서 다시 꺼내게 되었습니다

공구로 산 생선이 통째로 와서요

생선 손질을 하는데 이 칼이 상당히 유용했습니다

생긴 것 좀 그래도 저를 많이 도와주네요


홈트용 매트리스도 유용해요

이거 없었으면 홈트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2020년 북경 락다운 때 샀고 지난해 상해로 올 때 데리고 왔어요

이삿짐센터에서 트럭에 실을 때 안 실어서 나중에 따로 택배로 받았어요

그때 끝까지 안 챙겼으면 큰 일 날 뻔했어요

층간 소음은 나중 문제이고 제 무릎과 발을 위해서 충격 흡수용 매트리스가 필요하죠

긴 격리 기간 저의 홈트를 가능해준 매트리스예요


이건 실내에서만 신는 운동화예요


맨발로 홈트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양말 대신 신는다는 생각으로 데카트론에서 저렴이로 샀어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나이키 운동화로 제대로 샀을 텐데요

이 신발 신고 점핑잭 1,000개씩 할 줄은 구글도 몰랐을 거예요


아이스크림 제조기도 잘 사용하고 있어요


북경 왕징 카이더 몰 3층에 제 최애 녹차 아이스크림 집이 있었어요

1일 1 녹차 아이스크림 할 정도로 애정 했던 맛집이었어요

2020년 코로나 발생하면서 결국 문 닫았어요

녹차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투덜대는 제게 지인 분이 사 주셨어요

직접 만들어 먹으라고

길어진 봉쇄 기간에 지쳐서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이 아이 덕에 그나마 아쉬운 품목이 하나 줄었네요


저는 지금 2022년에 살고 있는 데 사용하는 물건은 2020년의 물건이네요

백 투 더 퓨처도 아닌데요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주인공 마티가 타임머신이 타고 간 미래가 2015년이었는데요

지금 중국에서의 2022년은 여전히 2020년에 봉쇄되어 있어요


지인 분이 2020년에 한국 갔다 오셔서 선양에서 14일 격리하고 북경으로 오셨어요

그때 북경 직항이 없었거든요.

중국어도 잘 못하시고 휴대폰 어플 사용에 능숙하지 않으신 분이라서

14일 격리 어떻게 하냐고 걱정해서 매일 연락드리고 어플에서 시켜드리고 했어요.

이번에도 북경 직항이 없어서 한국 갔다 오셔서 대련으로 오셔서 14일 격리 중이라고 연락 왔어요

제가 그랬어요.

14일은 눈 감았다 뜨면 지나간다고요


2020년 이전에 우리는 금요일 저녁에 한국 갔다가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스케줄로 한국을 왔다 갔다 했어요

대한항공 모닝캄을 거리가 아니라 횟수로 채웠으니까요

금요일 밤 9시 북경 출발 인천 행 KE854

일요일 저녁 7시 인출 출발 북경 행 KE853

출퇴근 비행기라고 불렀어요


2020년 3월부터 시작된 격리 정책으로 저희는 한국을 갈 수 없게 되었어요

한국 사람인데 한국을 못 가요

누가 알면 나라가 없어진 줄 알겠다고 지인들과 자조 섞인 농담 했죠

한국 전쟁 후 최대의 이산가족이 생겨났어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 없었고 가족들도 중국으로 올 수 없어서

수많은 가족들이 생이별을 해야 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에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갈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어요

이 일은 2021년 12월 제게도 일어났어요

2022년 3월부터 시작된 상해 봉쇄는 제게

14일 격리는 눈 감았다 뜨면 끝난다는 농담을 하게 하네요


지금까지 역사는 이긴 자의 노래였어요

문자와 기록은 가진 자와 승자의 전유물이었으니까요

이제 디지털 시대에 역사는 누구나 기록할 수 있는 모두의 노래가 되었어요

이기지 않아도 가지지 않아도 기록할 수 있어요

상해 봉쇄와 제로 코로나 정책은 언젠가 끝이 날 거예요

여러 사람들이 현대사에 평가하고 기록할 거예요

그리고 그 기록에는 상해 봉쇄와 제로 코로나 정책로

고통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배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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