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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상해이야기22-여기서 시작되었다(량주고성유적)

by 안나

한때 제 여행의 컨셉은 유네스크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었어요. 유네스코 발행 도감을 책장에 꽂아놓고 일년에 한 나라씩 여행하면서 그 나라에 있는 유네스크 문화유산을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해마다 선정하는 문화유산 목록을 신상품 기다리는 듯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어요. 2010년도 이후로 유네스코기 지정하는 문화유산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논리가 개입하는 듯하면서 지정 수준과 대상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어요. 지금은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을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근처에 있는 곳을 굳이 안 갈 필요는 없겠죠.량주고성유적을 찾아 주말을 이용해서 갔어요. 상해에서 항주까지 고속 열차로 1시간 걸려요.


량주고성유적良渚古城遗迹


하루 6시간 동안 개방하고 한 시간에 500명 입장이라는 제한을 두었지만 제가 갔을 때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특별히 인원수 제한이 없었어요. 원래 예약해야 하지만 외국인은 예약이 안되어서 현장에서 여권으로 표를 샀어요. 입장료는 40위안 전동차 20위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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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주고성유적공원

고성 유적지 안에는 전동차가 노선 별로 다녀요. 중요 포인트마다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어요. 걸어 다니기에는 좀 커요. 유적지 안에서 탈 수 있는 자전거나 전동차도 있어서 빌려 탈 수 있어요. 다행히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디오도 있어서 20위안 내고 빌렸어요. 아쉽게도 비가 오네요. 량주 고성 유적은 특별히 뭐가 남아 있어서 눈으로 봤을 때 딱 들어오는 유적지는 아니에요. 설명의 대부분은 컴퓨터 그래픽과 모형을 이용했어요. 고성 터와 수리 시설의 흔적은 분명하게 남아 있고 출토된 옥기, 토기, 무기도 있어서 어느 정도 계급 사회의 형태를 뗬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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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자 스신겅,유산분포도,량주고성지도

1936년 저장성 박물관 직원이었던 스신겅施昕更이 자신의 고항 위항 余杭에서 처음 신석기시대의 도자기와 옥기를 발견 후 약 80년 동안 고고학자들의 연구와 조사가 이어졌어요. 2019년 7월 6일 중국의 55번째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 되었어요. 5천 년 전 문명의 고지, 거대한 궁전 터와 성벽, 수리 시설, 신앙과 권력, 계급 사회로 초기 국가 형태를 갖춘 중화 문명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부여받고 있어요.

후기 신석기시대의 사회적 분화와 통일된 신앙을 갖춘 초기 국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고 계급이 있었고 매장문화, 태후太湖를 중심으로 한 환태호环太湖지구 주변에서 발달한 문명의 중심지로 기원전 3,300~2,300년 전에 건설된 성터, 4 개의 지구로 이루어져 있어요. 면적은 280만 제곱미터로 추정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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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하문명의 시초인 하 은 주 시대부터 훨씬 앞선 시대에 저장성 지역에 북위 30도를 따라서 인류 문명이 생겼났고 이집트 수메르,메소포타미아.인더스 등에 맞먹는 문명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만들고 싶은, 가지고 싶은 그들의 역사는 역사가 판단할 거니까요.

유네스코 문화유산 선정 당시 중국 언론에서는 ·중화 문명의 역사, 문화적 가치, 중화민족의 숭고한 정신을 세계에 선 보이면 실제 고대 중국과 현대 중국을 증명하는 명함과 같다`고 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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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주 보물원良渚博物院

박물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보물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네요

량주의 역사가 5,000년 전부터라는 강조하고 있어요. 당시 국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왕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옥장식이 제일 중요한 전시품이에요. 왕실 권력의 상징, 짐승의 얼굴을 장식으로 새겨 넣었어요. 다신 신앙에서 하나의 신앙으로 발전했을 거라는 단서이죠. 량주 문하는 4,300년 전부터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량주의 모든 시공간은 5,000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중국 문명의 또 다른 시작점이라는 주장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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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역사를 가지고 싶어 합니다. 현재를 살면서 역사를 필요로 하죠.

5,000년 전의 것이라면 먼지라도 긁어 모아 전시할 그들의 간절함은 어떻게 말리겠어요. 그들의 끈기와 집념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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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시작된 농경문화가 점차 상해 쪽까지 퍼져 나가면서 상해 광푸린广富林 문화의 전신이기도 하니까요. 상해의 문명은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먹고살만하게 되면 제일 먼저 챙겨보는 게 집안 족보라지요.

다음에는 광푸린 다녀온 이이기를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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