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디 미카토 지음
우리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어디 가서 인종차별은 받으면 다 같이 대동단결해서 분노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우리가 받는 차별은 억울하고 부당한 것이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다문화라는 단어가 왜 있어야 할까
원래 문화는 다 다른데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소위 한민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다문화라는 울타리를 치고 가둬 놓는다.
우리는 대놓고 그들을 차별하지 않지만 개개인이 알아서 우리와 다르다는 선민의식과 우월감으로 그들을 뒤에서 옆에서 차별한다.
<나는 화이트에 엘로에 약간 블루>는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이다.
일본인 여성이 영국인 남성과 결혼에 화이트에 엘로인 아들을 낳았고 브라이튼이라는 지역에서 성장한다.
일본인도 영국인도 아닌데 영국 땅에서 살아간다. 영국의 사회 시스템과 문화에 적응하면 살아가면서 같은 나이 친구들과 문화적 차이로 때로 차별받고 때로 단합한다.
차별은 어디에나 있다. 수영장 레인에서도
아들은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부모가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게 싫어서 거리를 두려고 했다. 다른 인종을 비하하는 파키, 칭키, 니거라는 단어의 굴레를 쓰고 싶지 않는다.
다문화에 정당이라는 것은 없다.
펭귄도 동성애를 한다. They must be in love.
LGBTQ 레즈비어,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퀘스처닝를 배우고 시민적 내셔널리즘과 민족적 내셔널리즘을 고민한다.
출신지가 어디든, 피부색이 어떠하든 무슨 종교를 믿는 용기를 내어 서로 힘을 합쳐 더욱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믿는 내셔널리즘이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니컬라 스터전 Nicola Sturgeon는 이렇게 말했다고 나온다.
재주성 在住性, 아들은 지금 영국에서 살고 있는 중학생이다.
영국식 교육을 받고 유럽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내 아버지가 영국인이든 내 어머니가 일본인이든 지금 이 순간과 공간에서 그것이 결정변수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감정과 의식은 공원에 있는 수풀처럼 간단히 잘라버릴 수가 없지만 내리지 않는 열은 없는 것처럼 끝없이 갈등과 회의 속에서 아들은 단단하게 성장할 것이다.
심퍼시(Sympathy 감정적 상태)보다 엠퍼시(Empathy 지적 작업)를 배우면서.
우리에게 진정 차별하지 않으려는 마음과 포용하려는 마음은 있는지 되새겨 본다.